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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03. 2021

R=VD / 철수

이야기가 시작되는 소리

  우리 독서실앤 고3이 유독 많았다. 독서실엔 빈자리가 더 많았다. 고3이라 바빠서 그렇겠지 생각했다. 나는 공부를 하든 미드를 보든 독서실에 매일 갔다. 집에서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우리집은 아파트의 모서리 세대여서 소리가 많이 났다.


  빈자리의 고3들은 학원에 간 것인지 피씨방에 간 것인지 아직도 모른다. 자리에 펼쳐져 있던 EBS 수능특강 교재들만이 그들이 고3인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가끔 출석하는 학생들은 조용했기에 독서실은 언제나 조용했다. 그나마 시끄럽게 소음을 내는 사람은 곧 쪽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도 한번은 쪽지를 쓴 적이 있었다. 그리고 사실은 받은적도 있다.


  그러나 보통날에는 내가 있던 독서실 방에는 나 혼자 출석하는 일이 잦았으므로 그 날의 공부를 하느냐 마느냐는 오롯이 내 책임이 되었다. 집에서처럼 가족이나 동네 사람이나 지나가는 방구차나 앞 아파트에서 열리는 오일장 따위를 핑계로 대기 어려웠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는 감각은 내게는 도움이 되었다. 독서실에 다니는 초반에 공부했던 탐구과목들은 다음 모의고사에서 점수가 올랐다.


  오피스에 출근을 하면 집에서 공부하던 고3의 어느날이 떠오른다. 그 때처럼 오피스엔 탓할 것이 많다. 온갖이유로 집중이 안 되지만 그 중에서 앞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제일 힘들다. 우리 회사는 오픈 오피스인데, 내가 볼 때 오픈 오피스의 유일한 장점은 단위 공간당 책상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관리자 입장에서야 다들 훤하니 보이는 오픈 오피스가 좋을 수도 있겠으나, 업무 효율엔 마이너스다. 업무 효율이 마이너스인 것은 많은 논문으로 입증되었으나, 어디 논문대로 안 되는 것이 오피스 구조 뿐이겠는가. 오십년간 회의가 크게 발전하지 않고 유지 된 것처럼 오픈 오피스도 그렇게 살아남았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지금처럼 저렴하지 않던 시절, 학창시절에는 엠씨 스퀘어라는 상품이 있었다.  왠지 아인슈타탄의 질량-속도 공식을 떠올리게 하는 이것은 사실 소리 파일 몇개가 담긴 엠피쓰리였다. 놀라운 상술로 그냥 화이트 노이즈 음성 파일 몇개(와 재생기를) 수십만원 받고 팔아치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에도 딱히 뇌과학은 몰랐으나, 설명서에서 진동하는 사짜냄새를 맡았던 나는 대신 빗소리를 듣거나 뉴 에이지 음악을 듣곤 했다. 공부를 할 때면 가사를 알아 들을 수 있는 음악은 피했는데 어떤 내용이든 공부보다는 재밌을 것이 분명했고 그래서 가사를 받아적거나 랩을 따라하든가 여튼 공부가 아닌 것을 할 것이 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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