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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Oct 02. 2021

결혼보고서 / 철수

요즘 무슨 생각 하세요?

  부모님은 젊은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해주시지 않는다. 동생과 나는 부모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재미있게 듣는 편이다. 어느 날은 어머니의 미모가 주제였다. 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몇 없는 대학 시절 사진을 보았다. 어머니는 고우셨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어머니는 어떻게 아빠를 만나게 되었을까?


  아버지가 못난 사람이라서는 아니다. 그보다는 20대 동아리 사진 속의 어머니가 과장 좀 보태 연예인 졸업사진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알기로는 결혼당시에 아버지가 부자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매력을 보았다기엔 선을 보셨는데... 알고보니 아버지는 선을 20번을 넘게 보셨다고 했다. 우리 둘이 받은 소개팅 숫자를 세어봐도 20개가 넘지 않았다. 우리에게 20번은 꽤 까마득하게 느껴져 왠지 납득해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른 듯하면다. 어머니는 석사 전공 후 디자이너로 살 생각을 했었고, 아버지는 수학과 유학을 가려고 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비슷하듯이 두 분이 그 시절에 대학원 생각을 하셨다는 것만으로 20대의 두 분도 닮은 면이 있으셨을 거다. 선이 없고 두 분이서 결혼하지 않았다면 두분의 삶이 어땠을까.


  아버지는 내가 막 30살이 되었을 때 내게 결혼에 대해서 보채셨다. 그 해에는 농담식으로 자주 결혼 이야기를 흘리셨는데, 어느날 질려버려서 정색을 했다. 조건 없이 내가 데려오는 여자친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아니시면 말도 꺼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 후로 직접적으로 결혼이야기를 꺼내신 적이 없다. 어머니의 의견은 아버지와는 좀 달랐다. 한국인이기만 하면 좋다고 하신다. 전부터 뜬금없는 외국인 사진을 보여드리고 여자친구라며 장난쳐서 그렇게 되신 건가 싶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지금도 그대로일까. 궁금하면서도 여자친구도 없는 상황에서 굳이 물어보고 싶지는 않다.


  동생은 결혼에 대해서 그림이 확실하다. 어릴 적부터 몇살 이전엔 갈거야 라며 계획에 대해서 말했다. 정작 그 나이는 자연스럽게 한살 두살 밀려났다. 이제는 나이가 마지노선에 가까워졌는지 전보다는 열심이다. 동생을 꽤 응원하고 있다.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기도 하고, 나처럼 막연한 마음으로 있다가 얼렁뚱땅 결혼할 사람 보다는 동생처럼 계획도 그림도 확실한 사람에게 행운이 먼저 찾아가야 한다는 운명론적 믿음도 있다. 왠지모를 부담감도 동생이 먼저 가고 나면 한결 가벼워질 것만 같다.


  내 인생에 하나의 축이 더 생긴다는 일은 아직도 상상하기 어렵다. 안 맞으면 이혼하는게 맞다고 하지만 또 내가 그러고 싶지는 않으니까.  몇 번의 연애동안 나름의 결혼관이 생겼는데, 그게 오히려 연애만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어쩌면 이게 다 동화의 부작용일거다.  사실 행복하게 살았다던 동화의 등장인물들도 결혼했다는 뜻은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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