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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Aug 28. 2020

취향(香), 삶의 향 / 우드수탁

유행과 취향

  누군가 함께 쇼핑을 하다가 “넌 어떤 스타일을 좋아해?”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요새는 심플하지만 재미있는 스타일이 좋아’이라고 나름대로 명료하게 말해줄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런 스타일이 좋아?” 라고 개인의 취향에 대한 이유를 묻는다면 조금 복잡해진다. 심플함을 선호하는 취향과는 달리 취향의 히스토리는 그리 심플하지 않은 것이다.


  취향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호불호가 생기기 시작한 시기는 아마도 학창시절 때가 아닐까 싶다. 잘 나가는 친구들과 지하상가 마네킹의 착장이 곧 내 호(好)였다. 그저 무리에 의한, 무리를 위한, 무리 그 자체의 선호였다.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가면 처음엔 눈에 안 들어오던 스타일도 “요새 학생들한테 유행하는 스타일이에요” 라는 말을 들으면 곧 쇼핑백에 담겨 돌아오곤 했으니까. 중학교 때는 ‘핫핑크 모토로라’, ‘젤리 슈즈’, ‘리바이스 501’이, 고등학교 땐 ‘사쿤 후드’, ‘레고 후드집업’이 쇼핑백을 차지했다. 지금은 돈을 줘도 취하지 않을 스타일이건만 튀기 싫고, 그렇다고 찌질(?)해 보이기도 싫었던 나에게는 호(好)였다. 결국 타인의 시선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취향이 개인의 ‘선호’보다 ‘타인의 시선’으로만 구성하던 초창기다.


  대학생으로 올라가면서, 강제적으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시기가 오는데 바로 과도기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올라오면서, 인천 지하상가는 순식간에 촌스러워 보였고, 명동 보세샵은 너무나 많은 스타일이 있었다. 중학교 때는 스타일에 일반적인 상중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동서남북으로 나뉘어졌 있었다. 명동 보세샵, 얼짱 쇼핑몰에서 질보단 양으로 승부하며 정말 다양한 시도를 했다. 결국 자아객관화에 실패하길 여러 번, 나에게 편한 옷과 남의 눈에 좋은 옷 사이에 간극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나는 그 간극의 합의점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시도하고, 포기하고, 버려나갔다. 대학시절은 ‘타인의 시선’과 ‘선호’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중기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교 문턱을 나와 취준을 시작하며 ‘타인의 시선’이 독으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탈주하고자 노력했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당하고, 거부 당하던 취준 시기라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제 마이웨이야! 나만의 변하지 않는 취향을 찾겠어’라고 외쳤지만 결국 그것도 내가 원하는 길은 아니었다. 맹목적인 탈주의 길은 순탄하지 않을뿐더러 그리 행복하지도 않았다. 기본적으로 금방 질리는 성격이라 트렌드와 무관한 일관된 컬러와 취향에 그리 끌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취하기 더 어려웠다. 그렇게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마음을 흔드는 옷들만 취했다. 그 끝에는 점점 일관성이 생겼는데, 으레 활동하기 편하면서도 트렌디한 포인트가 있는 룩이었다. 그 룩에는 내가 자연스럽게 담겨있었는데 추구하는 이상도 곁들어있었다. ‘심플하지만 포인트 있는 룩’에서 심플함은 내 몸에 편안하면서, 튀고 주목 받기 싫은 마음, 포인트는 마냥 무존재로만 남고 싶지 않은 역설적인 마음, 현재 나의 이상향인 것이다.


  유행이 곧 정석이던 초창기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방황하던 중기를 딛고, 지금은 나름의 취향이 있다고 인정하게 된 안정기에 와있는 것 같다. 결국 취향의 이유를 돌이켜보니 인생에 거쳐온 시간들과 함께였다. 아마 또 다가올 시간들과 함께 달라지겠지. 나에게 취향이란 절대 변하지 않는 절대 선호보다 내가 거쳐온 시간 시간에서 묻어나는 향이 발라져 있다. 아마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고, 달라지기를 바란다. 그저 지금 보내고 있는 순간 순간의 향을 담아냈을 때의 취향이 잔향이 아름다운 향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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