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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Aug 24. 2020

니코틴패치 / 우드수탁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그녀는 집에서 나오다 문득 담배를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다시 들어가 담배를 챙겨 나올까 망설이다 동시에 그가 떠올랐다. 그를 처음 만나고 3일간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평소 회사에서 틈틈이 담배를 피러 가던 시간에 그의 카톡에 먼저 답장을 했다. 그는 그녀에게 여유를 만들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담배를 가지러 다시 올라갈까 고민하며 그와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그 날 그녀는 오랜만에 집에 가기 싫다는 감정을 느꼈다. 오래 기다린 택배가 집에 도착해있다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평소였으면 온갖 핑계를 대며 집으로 가는 경로를 쳐보고 있었을 그녀다.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내내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난스레 왜 웃냐는 장난을 던지면서도 동시에 그의 미소가 온전한 자신의 것이기를 바랬다. 대화를 하며 무심코 그와 눈을 마주쳤을 때는 소름끼칠 것 같은 희한한 감정까지 느꼈다. ‘확실히 특별한 것 같지만, 아직은 몰라’ 라는 말로 방어를 늦추지 않았던 그녀에게 한 방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스레 지하철 역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오늘 우리가 무슨 얘기를 했더라 라며 복기하고 있을 때, 그는 잠깐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에어팟 한 쪽을 건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들어볼래요?” 그녀는 어떤 노래 취향일까 궁금하면서도 실망할까 두려운 마음으로 귀에 에어팟을 올렸다. 이윽고 익숙한 반주가 흐르며 “그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라는 가사의 죠지의 “바라봐줘요”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꽤나 오래 장식했던 노래였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이 길에서 이 노래를 듣고 있는 그의 표정을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아무렇지 않게 흥얼거렸다.


  그는 그녀가 지나가면서 친구들에게 ‘내 스타일은 저런 느낌이야’라고 말하던 얼굴과는 거리가 있었다. 길을 지나갈 때 시선을 잡아두는 외모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앞에서면 자꾸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는 모습이 불쑥 나왔다. 대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초조해지고, 분주해졌다. 마치 누가 그려놓은 그림에 색깔 칠하기만 하다가, 갑자기 스케치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삐뚤 빼뚤한 스케치가 드러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그와의 통화를 끝내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그의 얼굴이 뿌옇게 느껴졌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쓰다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옷장에는 어떤 옷들이 있을 지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도 그녀와 같은 감정이 아니라면 어쩌지라며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평소 그녀가 자주 하는 말인 “어쩔 수 없지 뭐”가 통하지 않았다. 어쩔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됐다.


  그녀는 그를 좋아하고 있고, 행복하면서도 설레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중적인 감정이 그녀를 끊임없이 몰아세우고 감정에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더 이상 담배는 그녀 마음의 안식처가 되지 않는다. 그와 연결되어있다는 단서가 그녀의 숨통이었고, 그녀는 그 단서를 지키고 싶어졌다. 이왕 담배를 잊은 지 꽤 된 김에 끊어보지 뭐라고 생각하며 다시 발길을 돌려 그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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