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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01. 2020

독고다인데 / 우드수탁

내 인생을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면?

  “인생~ 독고다이야” 20대의 어느 시점부터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독고다이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인생 혼자 왔다 혼자 간다’라는 뜻이라고 어렴풋이 기억한다. 하여간 언제부턴가 이 말을 나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되뇌었다. ‘독고다이’가 인생의 단어로 살기 시작했던 시기는 2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20대 초반에 대학교 선배, 동기, 동아리, 강의실 학생들로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고등학생 때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관계가 넓어졌는데 깊이까지 동시에 유지하려 허우적거렸다. 모두 날 좋아해주길, 좋은 사람으로 함께해주길 순진하게 바랬다. 이내 좋아하던 사람들이 떠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했을 때 그저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애초에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그 때는 긍정적이었달까, 노력하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거다.


  하루는 자취방에서 핸드폰도 꺼두고 티비를 보며 마냥 우울감에 빠져있었는데, 친구들이 찾아와 쓰레기장같은 집을 청소 해주고 시간도 함께 보내주었다. 문득 상처 준 사람들만 바라보다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소중한 사람에게 보답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하기로 결심하고선 내 마음에는 높은 벽이 쌓였다. 애초에 에너지 많은 인간도 아니었기에, 새로운 사람에게는 좀체 마음을 열지 않고 이미 소중한 사람에게만 터놓았다.


  그렇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조건적인 애정을,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다소 시니컬해졌다. 그 때부터 ‘독고다이’가 자연스럽게 인생의 모토가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심을 놓자 마음이 가볍고 편했다. 여전히 남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았지만, 인간 관계에서 오는 상처에는 나름 만족스러운 문장이었다. 나뿐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독고다이’를 외쳐댔다. 친구들이 스스로 희생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을 때 “인생~ 독고다이야! 너가 가장 행복한 길로 그냥 가, 남 생각하지 말고”라고 내뱉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넓어지기만 할 것 같던 인간 관계가 점점 좁아졌다. 소중한 사람들은 여전히 곁에 있었지만, 학생 때처럼 인생의 모든 갈래를 함께하진 못했다. 굳이 내가 ‘독고다이’라고 외치지 않아도 어느새 나는 이미 ‘독고다이’였다. 성공적으로 홀로서기를 이룩했다고 기뻐해야 하는데 마냥 기쁘지 않았다. 쿨한 척하고 있었지만 그저 상처를 피해 가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굳이 험한 길을 갈 필요는 없지만, 모든 길을 차단해버리고 있던 것은 아닐까. ‘독고다이’로 당당한 게 아니라 그저 은신처로 존재한 것은 아니었을까.


  여전히 나에게 ‘독고다이’는 긴급소독약 같은 존재다. 관계에 데였을 때, 바로 응급처치를 해줄 수 있는 단어. 바뀐 것이 있다면 더 이상 독고다이는 단순한 명제가 아닌 가정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고다이다’에서 ‘독고다인데’로 열어놓고 싶은 가정. “독고다인데, 너가 내 곁에 있어서 정말 고마워”, “독고다이지만, 당신과 함께라서 더 행복해요”. 상처가 무서워 피해가기보다, 조금은 용감하게 다가가는 것이 더 건강한 ‘혼자’가 되는 길이 아닐까. 앞으로의 인생은 독고다이라는 방어막은 잠시 내려두고, 다가올 사람들과 건강한 독고다이의 길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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