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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Aug 13. 2021

누군가의 표정을 만드는 일 / 박브이

일의 기쁨과 슬픔

  한 장소에서 바텐더로서 손님을 맞이하게 된 지 곧 2년 째에 접어들게 된다. 매일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상이다. 가게의 구석 구석을 쓸고 닦거나, 여러 재료를 쓸 만큼만 나누어 차곡차곡 정리하거나, 묵묵히 얼음을 깎아내거나, 술과 시럽을 만드는데 쓰는 과일을 만지작 거리며 손님을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던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반갑지 않을리가 없다. 물론 가끔 무리한 요구나 무례한 언행에 마음 속의 무언가가 구겨지는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우리가 준비한 음식과 음료를 맛있게 먹고 마셔 주었으면 좋겠고, 이 공간에서 보낸 짧은 순간이 추억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손님이란 어찌됐든 고마워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게 만드는 존재다. 


  생각해보면 성인이 되고 나서 줄곧 틈틈이 손님들을 맞아 왔다.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말을 처음 건내게 된 곳은 대학가의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이었다. 가끔 오던 꼬마 손님들에게 작은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떠 주면 자그마한 손으로 받아서 오물오물 먹던 귀여운 얼굴들이 기억난다. 제대를 하고 일본에서 지낼 때는 라멘집에서 손님들을 기다렸다. 정신없이 면을 삶으면서도, 돌아오는 빈 그릇에 기분 좋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복학을 하고 나서는 학교 앞에서 친한 형이 운영하던 공간을 맡았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내가 그러듯이 공간을 거쳐갔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끔 떠올리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으면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주류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손님을 기다리는 이들을 손님으로 상대하게 되었다. 그들이 맞이하게 될 손님들에게 우리가 취급하는 술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많은 준비를 했다. 개중에는 이름이나 숫자에만 관심을 두던 이들도 있었으나, 농가에서부터 양조장을 거쳐 누군가의 술잔에 담기는 데까지 쌓이는 술의 가치를 손님들에게 온전히 전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주던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 덕분에 덜 외로웠지만, 그렇게 담긴 술잔에 비치는 손님들의 표정이 늘 궁금했다. 그래서 가끔 박람회에 참가하거나 하면 준비는 고됐지만 손님들을 직접 볼 수 있어 괜히 신이 났다. 상상으로만 만나던 표정들이 그곳에 있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퇴사를 하고난 뒤, 충분히 휴식을 하고 나서 우연한 기회에 근사한 회사에서 운영하는 공간을 관리할 기회가 주어졌다. 현장에 있는 이들을 위한 운영적, 사무적인 지원이나 공간 내에서 이루어지는 기획 또는 행사의 조정이 업무의 주된 내용이었다. 공간의 관리에 필요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고민할 수 있는 자리였지만, 손님과 맞닿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그랬었기에 손님이 있는 현장이야말로 스스로가 빛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정해진 기간을 모두 채우고, 다시 회사를 나와 모두가 당황했던 시기를 지나 바텐더가 되었다. 


  사실 바텐더가 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바텐더로서의 경험과 지식이 필요해서 되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말이다. 그렇다고 바텐더라는 직업을 한 번쯤 겪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또는 단순한 호기심에 선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텐더가 되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바 안쪽에 서게 되었다. 바에 앉아서는 보이지 않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많은 준비부터 손님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 달거나 혹은 쓴 반응과 가끔씩 생기는 소중한 인연까지. 멀지 않은 미래에 갖게 될 나의 공간을 채워줄 소중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끔 어떤 칵테일을 처음 주문해 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손님이 있다. 누군가의 처음을 만드는 일이란 늘 긴장이 된다. 손님과 그 술의 첫 만남을 기분 좋게 주선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이 손님에게 이 술의 인상은, 적어도 그가 다른 곳에 가서 다시 주문하게 되기 전까지는, 내가 만드는 이 한 잔으로 남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온갖 마음을 담아 만든 술을 잔에 채우고, 손님에게 건낸다. 손님이 맛을 보곤, 적당한 리듬의 끄덕거림이 약간의 미소로 이어지면 그제서야 나도 웃음을 짓는다. 


  어쩌면 내가 기다리는 것은 손님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지어주는 표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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