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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Aug 30. 2020

당신의 답안지엔 무엇이 적혀 있나요 / 박브이

유행과 취향

  매일 아침 알람으로 설정해 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북천이 맑다커늘’을 들으며 잠을 깬다. 핸드폰 전화 벨소리도 같은 곡이다. 얼마 전에는 Paris Match의 20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이 새로 나와서 재생목록에 넣어 두었다. 민수의 ‘민수는 혼란스럽다’는 라이브 연주 영상으로 처음 접했는데, 간주 부분이 자꾸 생각나서 찾게 된다. 이 외에도 스스로의 시간들을 채워 온 많은 노래들이 있다. 이 노래들을 즐겨 듣는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노래들을 좋아한다는 것이 적절한 맥락을 이룬다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비단 노래 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이 이어나가는 일상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으로서의 선택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각자의 선호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물론 제한된 선택지 내에서 타협을 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모든 선택이 온전한 선호에 의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양보하지 않게 되는 선택지들이 있다. 그렇기에 자주 선택되는 답이다. 이러한 연속적인 선호를 담고 있는 답들은 알게 모르게 축적된다. 그러다가 그 자체로 특정한 방향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을 취향이라고 한다.


  질문 투성이의 일상이 문제지라면 취향은 일종의 답안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문제지와 다른 사람의 문제지가 다르기 때문에, 답안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다른 사람과 겹치는 질문은 있을 수 있다. 그 답이 같다면 공감할 수 있고, 다르면 대화하면 그만인 일이다. 물론 취향에 쏟은 시간에 따라 깊이를 논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차이이지 우열의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해답지 또한 따로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무언가의 유행을 좇는 것이 불편해지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유행에 해당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려 한다는 점에서 유행은 일종의 해답지로서의 역할을 자처한다. 동시에 그 자체로 선택의 이유로서 선호의 기능을 대체한다. 해답지를 보고 그 답을 그대로 적거나 그에 가장 비슷한 답을 고르는 꼴이다. 그나마도 그것이 유행인 시기에 한정하여 기능을 할 뿐이다. 다음 유행에서는 이전에 유행했던 선호들이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답들을 축적할 기회가 주어질리 없다. 유행을 좇는 것이 취향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유행은 다음 유행을 향할 뿐 유행에 속한 개개인을 향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스로가 내리는 선택들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선호로서 축적되어 취향을 이루면서 각각이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유행에 따르지 않기 위해 남들과 다르기 위한 선호를 가지려 하는 것도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남들과 다른 존재가 되고싶다는 생각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나름의 답안지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로 이미 남들과 다른 존재다. 다름을 추구하면서 이미 지니고 있는 다름을 부정하는 아이러니이다.


  각자의 취향은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이미 그 자체로 유일한 답안지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의 답안지나 유행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그 답안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내가 답안지에 무엇을 적고 있는 지를 아는 것이다.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취향을 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취향을 스스로가 확인함으로써 내가 온전한 나로서 있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동시에 그 취향이 자기 자신의 취향임을 확신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 답안지에 나의 이름을 적는 것과 같다. 그렇게 저마다의 답안지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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