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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29. 2021

정녕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옵니까 / 이루시엔

요즘 요즘 무슨 생각 하세요?

  회사 사정으로 신입사원을 매년 뽑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 기수의 막내 생활은 3년이나 이어졌고 수습기자 시절을 포함해 3년 차에도 사회부에 끌려가면서 생고생이 계속됐다. 지금과 같은 근로법이 정해지지 않아 수당도 없이 주말출근과 연장근무는 물론이었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군기였다. 다른 직군보다 선후배 기수 문화가 꽤 강하게 자리 잡은 탓에 선배의 말은 곧 하늘이었다. 개인적인 저녁 약속은 혹시 선배가 밥 먹자고 불러낼까 봐 따로 잡지도 않았고 선배가 메시지가 오면 늦어도 30초 안에 무조건 답장을 했다. ‘죄송합니다’를 숨 쉬듯이 내뱉었으며 온갖 자질구레한 일은 다 도맡아서 했다. 새벽에 울면서 타자를 두드리고 아침 7시까지 눈물 자국이 남은 채로 헐레벌떡 출근했다. 그때는 선배들 눈도 못 마주치고 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보면 유난이라고 할만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이렇게 답답하게 어떻게 일하느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 있겠지만 살길은 있다. 사회에서는 나이가 깡패일지 몰라도 회사에서는 연차가 깡패였다. 연차가 하나씩 올라갈수록 선배들과 농담 따먹기도 할 수 있고 일에서 좀 빠질 수도 있다. 특별한 미팅이 없다면 아무도 내가 어디 있는지 찾지 않으며 맘만 먹으면 코로나 시국이 아니라도 집에서 한 걸음도 안 나가는 재택의 삶을 누릴 수 있다.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의견을 개진할 수도, 팀장과 맞붙을 수도 있다. 그냥 ‘막내’만 아니면 그럭저럭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곧 기자 직군에서는 막내가 특수하다는 얘기가 된다. 막내에게 기대되는 군기와 행동 양식은 그 어느 직군보다 하드코어하다. 눈 닫고 귀 닫고 입 닫고 일할 것을 기대하므로 막내가 독자적인 판단을 하거나 늦잠 자고 일찍 퇴근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상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돼버렸다. MZ 문화 영향인지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후배들과 가까이서 소통할 일이 줄어서인지 그 원인은 모르지만, ‘막내 온 탑’이 돼버렸다. 후배 기자들 늦잠 출근에 아침에 일일이 모닝콜을 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공식적인 퇴근 시간은 6시 30분인데 5시만 되면 ‘집에 가겠노라’며 애들이 사라진다. 발제 기사 외에도 루틴적인 업무가 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어느샌가 또 내가 그걸 하고 있다. 같이 기사를 쓰게 되면 선배의 고유 권한인 데스킹을 후배 기자가 본다든지, 야마를 자기 맘대로 바꿔버리기도 한다. 업무 메시지를 보내면 1시간 동안 감감 무소식은 기본이다. 


  최근에는 제일 화나는 일이 있었는데, 막내 후배가 연차도 안 쓰고 3일을 통으로 놀려고 했던 일이다. 잠깐 다른 부서로 파견을 갔다가 우리 부서로 조기 복귀하는 과정에서 개인 사정이 있다며 부장에게 복귀 일을 며칠 미뤄달라고 했다. 부장은 알겠다고 했지만 편집국 차원에서 허용될 리 만무했고, 그대로 예정일에 복귀하기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 친구가 증발해버렸다. 놀라서 알아보니 복귀 소식을 갑작스럽게 들었다며 개인 사정 때문에 늦게 복귀하겠다고 자체 판단을 내려버린 것이다. 어떤 개인 사정인지 설명하지도 않은 채 무작정 복귀를 안 하겠다고 하는 게 회사원 상식에 맞는 일인지 내 가치관까지 흔들렸다.


  당연히 팀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나를 포함한 선배들도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얼이 빠졌다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퇴사자와 파견자가 생기면서 인원 공백이 커 파견에서 일찍 복귀시킨 건데, 본인이 따로 잡아놓은 개인 일정이 있다고 복귀하기 싫다고 하는 이 상황은 상상도 못 해본 일이다. 내가 있는 기자직군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일일테다. 그런데 이 친구는 당당하다. 복귀를 하게 되면 어차피 같이 일해야 할 팀 동료인데, 싸한 분위기에서 일하기가 싫어 따로 불러 ‘너의 행동은 잘못됐으며 이 상황을 설명하고 팀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이라도 해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건 “제가 왜요?” 식의 태도였다. ‘죄송합니다’는 절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당당한(?) 문화에 아직도 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나도 MZ세대 중에 하나지만 요즘은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우리 팀 막내의 이야기가 회사 내에서 알려지자 회사 선배들은 ‘막내 기수들이 문제가 많다’면서 한두명씩 막내 기수들에게 당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시승기 기사를 쓰면서 선배를 운전기사로 부려먹은 이야기, 회의에서 당당하게 기사를 적게 쓰고 싶다고 의견을 낸 이야기 등등. 


  여기에는 회사 내 꼰대와 갑질 등을 지양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물려 우리 정도 연차 기자들도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꼰대 문화를 질타하는 사회 문화 속에서 입사하자마자 혹독하게 군기 잡는 꼰대 선배들에게 당하면서 ‘우리는 절대로 저렇게 되지 말자’고 약속했다. 후배가 들어와도 엄격하게 대하지 않았으며 힘든 일은 다시 우리가 도맡아 했다. 반말보다는 존댓말, 저녁약속엔 절대 불러내지도 않았다. 후배를 불러 꾸짖는 일도 없었다. 엄한 선배보다는 친한 언니 오빠가 되고 싶었나 보다.


  선한 의도로 사람을 대했지만 결과는 내 발등에 도끼를 찍은 셈이 됐다. 자신있게 일을 미루는 후배 기자들 덕에 내 일은 더 많아졌다. (젊은 꼰대 주의) 요즘따라 지금은 다른 회사로 떠나버린 군기 잡던 선배들이 그립다. 이게 바로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것일까. 이렇게 난 새로운 회사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내가 막내 땐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살게 되는 것일까. 정녕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밖에 없는지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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