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업진언. 입으로 지은 죄를 사하소서. / 박홀든

나의 인생을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면?

by 글리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 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수리 마하 수리 수수리 사바하…. 어머니는 삼십 년을 매일같이 경을 읽으셨다.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올 무렵이면 집안에는 늘 일렁이는 촛불과 어머니의 경소리, 매캐한 향 내음이 피어올랐다. 때로는 새벽잠을 깨 칭얼거리는 채로, 때로는 어머니 곁에 배를 깔고 누워 장난감을 만지면서, 또 언젠가는 교복을 챙겨 입다 말고 향을 맡으며 그 뜻 모를 소릴 들었으니, 어쩌면 살아온 날 대부분을 밝힌 것은 아침이 아니라 그 독경 소리였을는지도 모르겠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참된 말이라는, 천수경 맨 앞에 나오는 진언이다. 삼십 년을 들어왔음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입으로 죄를 짓는다. 하지 않아도 되었을 말을 뱉고, 그러려니 했으면 되었을 일을 공연히 쏟아내어 생채기를 내고 소금을 뿌렸으니 이 죄를 어찌 갚을 수 있을까. 말은 사람이 세상을 버리게 할 만큼 너무도 쉽게 삶을 짓이겨버리는데 나는 가만히 앉아 입으로 지은 업을, 감히 그 무게를 가늠해볼 뿐이다.


어떤 말들은 귀가 아니라 눈으로 듣게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주워 담지도 못할 모진 말을 한 건 이쪽인데, 늘 당신의 눈이 위태로운 촛불처럼 일렁인다. 나와 당신의 모든 시간을 더듬어 애써 그 말을 받아내려 요동치는 눈. 나는 그 찰나의 시간에 당신을 죽을죄를 지은 이로 만들고, 그리하여 나는 죄인이다. 그런 말들이 있다, 도무지 잊히지 않아 수많은 밤을 괴롭히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무던히도 많은 업을 서로의 마음에 쌓아왔을 게다. 한 번은 입으로 뱉으면서, 한 번은 뱉어진 말들을, 그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이해하고 견뎌야 하느라 우리는 매번 죄인이 되었을 것이다.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유언이 되고, 어떤 말은 입에서 태어나 사람의 마음에서 살아남는다는 한 시인의 말을 떠올린다. 이제는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그 수많은 마음에 남긴 유언이 고작 그런 것이라 생각하면 이내 마음이 욱신거린다. 하여, 내 눈에 담긴 촛불은 평생을 흔들릴 것이다, 갖은 말로 당신들의 눈에 담긴 촛불을 뒤흔든 죄로. 어쩌면 살아가는 매 순간 나는 또 업을 쌓고 죄인이 될 것이다. 당신의 마음에는 수많은 말들이 쌓일 것이고, 그중에는 아픈 말들도 있어 또 나는 당신을 죄인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매양 괴로울 것이다.


말을 하는 것이 두려운 주제에, 말을 해야만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마음먹었으니, 그 일렁이는 불빛을 내게 내비친 당신들에게, 혹여나 내 말을 나의 유언으로 남길 모든 이에게 전한다. 정구업진언. 부디 제 입으로 지은 업을 사하소서. 남은 나의 삶은 어쩔 수 없는 말의 업보와 업을 씻는 일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릴 것이다. 그저, 당신을 향할 나의 말들이 내가 아닌 당신을 위한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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