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좋아하는 단어 또는 문장
“내게 인간과 언어 이외에 의미 있는 처소를 알려다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오랜 시간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보리니”
어려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걸 아즉 자랑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책 줄 깨나 읽었다고 온갖 아는 것들을 이리저리 가져다 붙여 말을 만들던 때가. 늘 무언가에 성이 잔뜩 나 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무슨 대단한 자격을 갖춘 것마냥 알은체하며 말을 뱉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인간과 언어야말로 내가 속할 세게의 전부로 여긴다는 주제에 정작 인간의 삶에 대한 감수성으로 타인을 깊이 들여다본 일은 없었다.
물리치고자 하는 괴물이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뒤흔들고 있노라면, 누구나 너무도 쉽게 괴물이 되어버리곤 한다. 온갖 화로 가득 차 뱉은 말은 무기가 되어 누군가의 가슴을 짓이겨놓는다. 문제는 그 분노가 싸움의 목적이나 이유까지도 불살라버린다는 데 있다. 이유도, 목적도 잃어버린 싸움은 늘 진흙탕 싸움으로 비화하고 온갖 어려운 말들로 날카로운 척 말을 뱉노라면, 내가 무엇을 위해 괴물과 싸우고자 했던가 하는 공허함이 남는다. 괴물과 맞서다 보니 이내 괴물이 되어버리는 자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늘 외로운 법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발 딛고 서 있는지, 그리고 내가 맞서려는 괴물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우선 고개부터 돌려야 할 게다. 내 주변에 있는, 어쩌면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쌓고 각자의 세계를 채워왔을 자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 고유의 색을 띠는 삶에, 그 세계들에 눈을 맞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번 괴물이 되어 오직 허영을 위해 글을 짓고, 말을 뱉게 될 것이다. 인간을 향하겠다면서 사람의 삶은 자꾸만 잊어가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분노할 대상을 찾아 떼를 쓰고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는 패악질에 다름없는 건 아닐까 두려워진다. 사람은 간데없고 온통 악다구니만 남는 건 아닌가 하여 괴로운 것이다. 개인의 세계는 다른 사람들의 삶과 마주함으로써 색을 얻고, 비로소 '사람'의 삶으로 남을 수 있음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전히 나는 인간과 언어 속에서 '사람'을 까맣게 잊기도 할 것이고 괴물과 씨름하는 중에 끝없는 심연 속에서 방황할 것이다. 보잘것없는 말은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도, 그들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를 피워내지도 못할 것이다. 하여, ‘사람’으로 사는 일은 좀체 어려울 것이다. 다만 매 순간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말로 내 세계를 채워간다면, 그제야 겨우 다른 이의 삶도 담을 수 있을까.
수많은 삶들은 외면한 채 자신의 삶만큼은 투쟁의 맨 앞에 있는 줄로 아는 자들이 넘치는 때에 왜 저 문장들이 떠올랐을까. 허울 좋은 말로 자신만의 세계를 채우느라, 타인의 삶에는 그리도 엄격하면서 자신의 삶에는 늘 관대해지느라, 너무도 쉬이 세상을 희화화하는 자들 속에서 적어도 괴물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