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무례의 가벼움 / 박홀든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

by 글리

나이를 먹을수록 그러려니 하는 게 늘어간다만 예기치 못한 불친절과 반말에 불쾌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대뜸 날아오는 택시기사의 반말이나 어떤 인사말에도 대꾸 없이 바코드만 찍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심드렁한 표정에는 속절없이 화가 치솟곤 한다. 그러면 이 쪽에서도 퉁명스러워지거나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게 되는데 똑같이 옹졸해지는 것만 같아 뒷맛이 쓰다. 불쾌함을 넘어 분노까지 자아내는 이러한 불친절은 결국 재화를 사고파는 사람 모두가 서로를 자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일 게다. 서로를 돈벌이의 수단이나 재화로 대하는 무례함에는 도무지 적응되지도, 그러려니 할 수도 없다.


먹을 만큼 돈을 냈는데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이상하다며, 을이 때로는 갑질을 야기한다는 내용의 옹졸한 칼럼이 떠오른다. 그런 옹색한 사고는 재화를 사고파는 ‘사람’들 간의 일을 한층 가난하게 만든다. 그따위 사고는 늘 재화를 파는 사람의 일과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언행 모두를 싸잡아서 비천하게 만든다. 분명 생활 곳곳에서 마주하는 '파는 쪽'의 무례함은 오히려 '사는 쪽'의, 이 지극히 일상적인 교환 행위에서도 갑이 되고 싶은 자들의 무례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사람이 친절해야 하는 이유에 갑, 을을 나누는 궁색한 편 가르기나 돈의 지엄한 논리가 끼어들 곳은 없다. 눈을 맞추고, 친절하고 예의를 지키며, 품위 있는 언행과 몸가짐을 하는 이유는, 그저 그것이 나라는 사람이 나와 같은 또 다른 한 명의 사람을 향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 내가 사는 곳이지만, 나만의 일, 나만 사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나아가 그것이 어떤 서비스이든 간에 임금으로서의 가격과 상품으로서의 가격 어디에도 무례함에 관한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사람끼리 하는 일이니 사람이 지켜야 할 예의를 갖추는 것. 무슨 복잡한 공식이나 기호가 들어있지도 않은 이 간단한 논리를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잊는다. 타인이 나와 같은 똑같은 인간임을 망각할 때 사람은 서로를 수단으로만 보게 된다. 나는 어떤 날의 택시기사에겐 돈줄이었을 게고, 새벽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겐 편히 앉아 시급 채우는 일을 방해하는 귀찮은 작자였을 게다. 울컥 뿔이 난 내게는 그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구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순식간에 서로가 서로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리는 일이, 그 참을 수 없는 무례의 가벼움이 영 못마땅하지만 사람 사이에 오고 가야 마땅할 예의나 친절함은 지적 능력의 문제일지 모른다. 누구도 자신이 비굴하거나 남보다 열등해서 타인에게 존대하고 예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감정과 기분을 살피는 것, 그를 배려하고 내 언행을 다듬는 것, 화폐와 재화의 교환 기저에 있는 사람 사이의 본질을 이해하는 일은 그러한 지능 없이 절대 가능할 수 없다. 파는 쪽, 사는 쪽 모두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품성조차 갖추지 이에게는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법이다. 하여 참을 수 없는 무례함으로 자신을 깎아내리는 그 모든 이는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의 대상이다. 참으로, 딱한 작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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