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민낯 / 박홀든

내가 무서워하는 것

by 글리

두려움은 사람의 민낯을 보여준다. 누구나 특정한 대상에 관한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대상이 내가 가진 무언가를 앗아갈 것이라는 불안이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은 위협을 느낄 때 무언가를 지키고자 하는데, 요컨대 두려움이란 과거(트라우마)와 미래(불안)의 위협으로부터 현재의 나를 잃고 싶지 않다는 욕망과 같다. 따라서 무엇을 두려워하느냐는 질문은 잃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고, '나'를 온전히 유지하려는 이 욕망이야말로 공포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한다.


돌이켜보면 모든 '새로움'과 '처음'은 끔찍했다. 새로운 반, 새로운 사람들, 학교에 가는 발거음은 3월 내 무거웠고, 화장실도 가지 못해 줄곧 변비에 시달리곤 했다. 첫 해외여행과 입국 심사, 이국의 말소리들은 즐겁기보다는 괴로운 정도였다. 경계심 탓에 잔뜩 찌푸린 인상은 같이 간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했다. 이제 갓 시작한 일들은 어떠했나. 처음 잡은 운전대, 익숙지 않은 이와의 대화, 낯 선 곳에서 길을 잃자마자 느껴지는 핏기 가신 얼굴은 덩달아 어깨까지 움츠러들게 했다. 목덜미가 뻣뻣해진 채 겨우 몸을 끌고 돌아와 할 수 있는 일이란 쓰러지듯 눕는 것밖에 없었다. '통제되지 않는 환경에 놓이는 게 싫다', '규칙적인 일상을 깨는 일을 굳이 해야 하느냐' 따위의 말로 이런 두려움을 정당화하곤 했으나, 결국은 남들에게 바보로 보이는 일을 피하려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어야 해’, ‘나는 내가 허당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아니, 어쩌면 ‘나는 사실 잘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와 같은 얄팍한 자존심. 이 자존심의 발로가 모든 새로움과 처음에 관한 두려움을 부채질해왔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낯섦과의 조우 속에서 나는 언제나 낮잠에서 깬 아이처럼 어안이 벙벙해졌다.


모든 폐쇄성은 외부에 대한 두려움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바닥에는 자신이 쌓아 올린 일상을, 지금의 삶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자리한다. 공포의 크기는 욕망의 크기와 늘 비례하며, 따라서 새로운 대상을 접하는 것으로서의 '사건'은 어려운 일이 된다. 모든 ‘처음’의 문 앞에서는 누구나 눈만 끔뻑거리는 어리바리한 이등병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누구에게도 루키, 뉴비, -린이라는 이름의 아마추어들을 비웃을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닐까. ‘처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임에도 비웃음은 두려움과 머쓱함을 자아내 누군가의 ‘처음’을 ‘끝’으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언제부터 ‘완성된 인간’이라는 강박이 어깨를 짓눌러왔는지는 도통 알 길이 없다. 처음 뭔가를 시도하는 일은 여전히 너무도 두렵고, 새로운 일에 선뜻 나서는 일 또한 좀체 생기지 않는다. 허둥지둥하는 꼴을 보이지 않으려 남들 모르게 갖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는 일도 부지기수다. 다만 늘 어려운 게 많아 주저하는 나를 비웃지 않을 사람이 몇 명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들의 애정 어린 놀림에 여전히 뒷머리를 긁으며 너털웃음을 짓곤 하지만 덕분에 새로운 것들의 문을 두드려볼 수 있다. 앞으로도 수많은 새로움과 처음 앞에서 겁이 난 아이 같은 꼴이 될 테지만, 문을 열어보는 수밖에 없다.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선, 우선 바보가 되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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