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나에게 단 하루가 남아 있다면?
삶의 다음 날을 알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심지어 그다음 날이 죽음이라는 사실임을 안다는 것은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할 행운일 것이다. 사람은 내일을 알 수 없어 괴로워하면서도 내일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 여겨 오늘을 쉬이 지나쳐 보낸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 살다, 살다, 살아내다가 사람은 죽는다. 영원히 켜져 있을 것만 같던 스위치는 한순간에 꺼지고 깊은 어둠만이 남는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사람이 남긴 자리가 기억되는 시간만큼이나 그의 부재는 ‘지속’된다고 믿는다. 또한, 집과 일터, 일상의 언젠가 아주 잠시라도 시간을 보낸 장소, 사람이 지나간 모든 자리는 그의 성품과 태도를 고이 간직한다고 여기고 있다. 하면, 남은 자리의 모습은 내 삶의 모습이자 유언이 되어 남은 이들의 눈에 담기고, 이내 마음 한구석에 쌓일 것이다. 내가 떠났기 때문에 나의 '부재'라는 사실만큼은 남게 된다는 것은 떠난 쪽과 남은 쪽 모두에게 크나큰 역설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 각자가 느낄 부재의 감정이 어떤 결일지 결코 알 수 없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남을 자리를 단정히 정리해 놓는 것뿐이다.
어수선한 자리를 슬퍼하지 않도록, 뭐가 급해서 이리 부산스러운 채였는지 따져 묻지 않도록 때 묻은 곳을 말끔히 치우는 것은 백 마디 말보다 나은 유언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 눈길이 닿는 자리마다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간직할 자들의 부채를 덜어내는 예의이기도 할 것이다. 하여, 죽기 전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일은 남을 자들에게 마음을 다하는 일이고, 이내 찾아오는 죽음 앞에 애써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모든 죽음은 각자의 이유로 슬픈 것이지만, 어떤 죽음들은 이러한 마음씀으로 인해 숭고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게 될 사람도 자리도 정리하지 않은 채 순교할 자리만을 찾던 죽음이 온전히 숭고한 것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만하면 괜찮았어’라고 느끼는 죽음이 있을 것이라 감히 생각지 않는다. 사람은 생이 명멸하는 그 순간에도 ‘살고 싶다’고 믿는 존재이기에 사람인 것이다. 단지 지엄한 사실을 못내 받아들일 뿐. 모든 죽어갈 자들은 생의 마지막에서까지 아직 살아있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후회하고 안타까워할 것이다, 욕망하던 것을, 이루지 못한 일을, 남을 누군가를, 사는 내내 애써 지켜야 했던 것들을. 그리고 그 이유로 마지막 순간까지 짐을 진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끝없이 산꼭대기로 바위를 올리고, 결코 닿지 않을 과일나무와 물에 손을 뻗고야 마는 것일 테지만, 남은 나의 날들은 그 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살아져야 할 것이다. 결국, 삶의 모든 순간에 정성을 다함으로 하여 조금은 의연해지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