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
몇 번을 지더라도 끝에 가서 이기면 된다. 이게 게임의 법칙이다. 결승선에 닿기 전까지 겪을 수많은 모욕 따위 절대 돌아보지 마라. 알을 깨려고 애쓰는 자를 비웃는 놈들은 단 한 번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한 천치들이다. 그딴 헛소리에 마음을 쓰기엔 당신은 너무도 아깝다.
새로 시작하는 일들은 늘 끔찍했다. 그 모든 '처음'들에 적응하는 데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각은커녕 남들을 따라가기에 급급했으니 모든 일에 허둥지둥하는 꼴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눈이 먼 거북이처럼 더듬거리며 기어가는 꼴이라니. 부끄럽게도 이미 자신을 완성해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사소한 행동부터 삶의 태도, 대단한 지식과 기술, 혹은 인간적인 면모까지 부러움은 어디서든 울컥 솟아오르고 때때로 너무도 눈이 부셔 나는 또 한 없이 작아진다. 분명 시작이 느리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다행인 건 가장 최악의 단점은 늘 가장 사랑하는 모습과 함께 온다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우선 그 문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는 시간으로 비비는 수밖에. 분명,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뭔가를 잘하고 싶다면 매일 그것을 하는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도 오래, 누구보다도 많이. 요행은 반드시 들통나고 세상은 요행이 통할만큼 녹록지 않다. 분명 매일은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움츠러들고, 부끄러워지고, 부러워하고 열패감에 괴로워하는 날이 계속된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붙들고 있는 그 시간 속에, 모든 패배로 가득한 시간 속에 무언가 ‘시작’된다. 아주 잠깐이지만 지금의 나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고, 지난날이 까마득히 느껴질 만큼 나아진 자신이 거기에 있다. 느린 시작은 온갖 시행착오를 견뎌냈다는 것만으로 존경받을 만하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뿌리를 내린 나무는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시작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실패의 시간이 아니다. 더는 안 되겠다고 내뱉지 않는 이상, 온갖 일에 얻어터져도 다시 주먹을 올리기만 하면 결코 진 것이 아니다. 게임은 끝날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 더디고 느린 시작은 더지고 느렸음에도 ‘시작’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지속'될 수 있다.
생선을 감쌌던 종이로 덮어도 난초의 향은 숨길 수 없고, 날카로운 송곳은 어떠한 가죽으로 감싸도 그 끝을 드러낸다. 슬로 스타터인 주제에 여전히 그윽한 난초나 매서운 송곳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누가 얼마나 비웃을지는 알 바 없다. 지난 모든 순간을 딛고, 어떻게 죽지도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지금을 증명한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믿어왔음으로 하여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 감히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날의 서광이 저 모퉁이를 돌아 지금으로 오고 있다. 말뿐인 사람이 되기에 나는 내가 너무도 아깝다. 오늘도 자신만의 바위를 저 산 위로 묵묵히 밀어 올리는 슬로 스타터들에게 깊은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