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생존이 목표면 표류지만 보물섬을 찾아 나서면 모험이라더라.” 술자리에서 어느 선배가 우리가 사는 게 다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뱉었던 말을 떠올린다. 모험을 꿈꾸면서도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급급했던 그 날, 그 말이 그렇게도 마음에 남았더랬다. 생존이 급급한 사람에게 언감생심 보물섬이 웬 말인가. 일상이 버거운 자가 모험을 꿈꾸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생각해보면 여행은 모험과 닮았다. 새로운 장소가 불러일으키는 감각들, 기대했던 일은 늘 예상치 못한 일과 얽히고 계획은 그저 계획에 그치기도 하지만, 그것은 고생이기보다는 즐거운 일이라 이야기를 풍부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이 있다. 모든 모험은 떠나온 곳과 돌아갈 곳이 있기에 시작될 수 있다. 떠나온 곳은 새로운 곳에 발걸음을 내딛기를 부추기고 돌아갈 곳은 여행, 혹은 모험의 안락한 종착지로서 우리를 기다린다. 결국, 여행이나 모험 모두 일상을 보내온 어느 장소에 단단히 묶여있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한 카드회사의 광고 문구는 오직 이 점에서만큼은 적절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매일을 충실히 살아낸 자들에게는 그 결과가 어떠했든 휴식이 필요한 법이다).
도망치듯 떠나서는 어떻게 새로운 경험을 무서워 할 수 있냐며 나를 힐난하던 그가 고까웠던 이유가 이것이었을 것이다. 훌쩍 모험에 나서기에는 내가 딛고 있는 곳만으로 나는 이미 버거운 채였다. 꽤 머리가 굵어서까지 여행을 부담스러워 한 것은 돌아와야 하는 이곳, 나의 매일이 내게는 늘 어려웠기 때문이다. 밤이 찾아오면 이국의 정취, 처음 느낀 즐거움, 함께 간 사람과의 대화가 가신 자리에 늘 일상에의 걱정이 밀려왔다. 혼자 맥주를 마시던 불 꺼진 숙소에서 쉬이 잠들어 본 일이 없다.
자신의 일상에, 일어나서 밥을 지어 먹고 일을 하고 다시 잠이 드는 매일에 제대로 발을 딛고 설 수 없다면, 여행이나 모험은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덧없을 뿐이다. 쉬이 부서지는 아름다움은 찰나에 불과하고 일상은 파도와 같이 지속된다. 삶이 표류하는 동안에는 결코 모험에 나설 수 없는 노릇이다.
최근에서야 돌아올 날을 걱정하지 않는 여행을 두어 곳 다녀올 수 있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 편히 왔지?”라는 물음에는 괜히 눈두덩이가 벌게지기도 했는데, 돌아갈 곳이 더는 고된 곳이 아니리라 안도할 수 있어서였을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여전히 걱정스럽지만 더는 버겁지만은 않은 매일에 발을 붙이게 되었다. 하여 나는 그 여행들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모험과 같은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새로운 곳으로 망설임 없이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여행은 분명 나의 일상과 단단히 묶여 아름다울 것이고, 어쩌면 추억으로 남아 나의 매일을 또 다른 모험으로 만들어주기도 할 것이다.
서툴고 어려웠던 날에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말로 글을 마친다.
“고된 나날 속에서 삶이란 어쩌면 집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겨우 문을 열고 나설 수 있기 위해서라도 우선 힘을 내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애써 매일을 살아내야겠다.”
언젠가 다시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 위해, 매일의 모험 앞에 결코 표류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