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든 콜필드를 위하여 / 박홀든

필명의 기원

by 글리

제일 좋아하는 뭔가를 묻는 말에 늘 주저하곤 한다. 그러나 가장 사랑하는 외국소설만큼은 주저 없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꼽는다. 누구에나 그런 시절이 있다. 시간은 차고 넘치고 몸은 지나치게 건강한데 무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방황하는 때가. 내게는 23살쯤이 딱 그런 시기였다. 마음은 휘청이는데 몸은 이미 자라버려서 치기 어린 방식으로 어른을 흉내 내고, 젊음을 낭비했다. 하루는 술에, 하루는 누군가의 품에 달려드는 와중에 내가 깨달은 것은 단 두 가지다. 젊음은 어린놈이 갖기엔 너무 반짝이는 것이고, 그런데도 나는 너무도 빨리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즈음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읽었다. 꼴에 교양이라도 갖추겠노라며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다 세계문화전집에까지 손을 뻗친 다음이었다. 왜인지 모르게 홀든 콜필드에 그토록 마음을 빼앗겼더랬다. 모든 방황하는 자들의 이야기란 결국 이유도 모른 채 몸은 뉘어도 마음 뉠 데 없어 삶을 업신여기며 끝없이 배회하는 이야기다. 도대체 왜그러느냐는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귀로 삼키는 와중에 홀든 콜필드에게서 나를 발견한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의 나는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위태로웠지, 되는대로 위태롭게 사느라 삶의 목적을 찾지 않던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 온종일 파수꾼 노릇을 하겠다는 홀든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여기부터다. 무엇이 되고 싶냐는 어린 동생의 물음에,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에게, 변호사나 과학자 따위보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대답은 결코 철없는 헛소리가 아니다. 그는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회전목마를 타는 동생의 모습에서 크나큰 행복을 느끼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내 홀든의 방황은 타인을 통해, 그리고 타인을 위해 변화하고자 하는 이의 이야기가 된다.


분명 타인과 만남으로 인해 변화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타인을 위해 변화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린아이조차 어른의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와중에 기꺼이 보잘 것 없는 일을 택하는 자들은 결코 패배자가 아니다. 너의 기쁨에서 나의 행복을 발견하는 이들의 감수성은 허영과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의 그것보다 훨씬 두터운 것이다. 찌질의 역사를 겨우 딛고 나와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조그마한 일을 떠맡기로 한 자들에게 경배를. 타인의 기쁨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숭고함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우리는 모두 여전히, 언제고 얼마 정도 찌질할 것이고, 휘청일 것이고, 때로는 어지러운 마음을 가누지도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좇느라 정작 잊지도, 잃지도 않아야 할 것들을 수없이 놓치기도 할 것이다. 다만 돌고 돌아 기꺼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까지고 방황하는 자의 이야기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세상이 좇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얼마나 많은 길을 헤메어 왔는지, 무엇을 여전히, 그리고 새로이 좆고 있는지 헤아려본다. 홀든이라는 이름을 감히 빌려 쓰기로 한 이상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이 틀림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행에 관한 단상 / 박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