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박홀든
당신의 조각들
어떤 시간은 너무도 쉽게 사라지지만, 어떤 시간은 조각의 모습으로 마음 깊이 남는다. 그날 사랑하는 이의 눈빛, 표정, 말들은 이 조각의 빛을 더하고 그렇게 모인 조각들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각각의 색과 무늬로 지나간 시간을 붙잡아둔다. 시간의 조각은 때때로 돌아가고 싶은 한 시절로 남아 나의 현재를 단단히 붙들어준다, 마치 고향처럼. 하여 기억 한 귀퉁이의 조각들은 어느 날 갑자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딘가로부터 와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려니 하더라도, 유난히 이사가 빈번한 집이었다. 덕분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세간살이를 싸고 부리는 데 도가 텄고, 나와 형은 별 수 없이 남들보다 짜장면 몇 그릇을 더 먹어야 했다. 월세 단칸방에서 전세로, 오래된 아파트에서 더 넓고 비싼 아파트로 옮겨가는 와중에 딱히 고향이라고 부를만한 곳이 없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정작 나의 고향은 집을 옮길 때마다 부모님의 얼굴에 비친 표정과 눈빛에, 때로는 그들이 느낀 감격에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부모님이 자기 집을 가졌던 날을 기억한다. 갓 마흔을 넘긴 어머니가 한 시간을 걸려 과외를 하러 다니고 아직 검은 머리가 빼곡했던 아버지가 별을 보고 출, 퇴근하면서 마련한 집이었다. 유독 흰색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손수 고른 벽지 탓에 온 집안이 하얀 것을 보고 어째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고, 연신 바닥을 쓸고 닦던 아버지는 “꼭 병원 온 거 닮다”라며 농을 하셨다. 두 분은 소파나 TV 따위를 어디에 둘지 실랑이를 하다가 이윽고 빈 벽을 오래도록 지켜보셨다. 분명 하얗고 빈 벽이었는데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엔 별이 쏟아졌던 것만 같다. 차마 어찌 말하지 못한 설렘이나 감격이 그 눈에서 반짝거렸다. 아적 전세니 자가니 하는 말이 무언지도 모를 만큼 어렸던 주제에 그 눈빛만으로 배가 불렀다고 기억한다. 그날 우리 가족은 아파트 상가 2층의 허름한 중국집에서 2,500원짜리 짜장면과 만 원쯤 하던 탕수육을 먹었다.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15년 쯤 지나 대, 여섯 번 각지로 옮겨 다닌 뒤 다시 집을 옮겼다. 7년여 만에 네 식구가 함께 살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서울에 우리 집이 생겼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던 것 같다. 눈이 쏟아진 그 날 나와 아버지는 출근한 어머니를 대신해 짐을 옮기고 집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손수 평면도를 그려가며 인테리어를 고심한 집이었다. 분명 이사를 앞둔 몇 달간 두 분의 대화는 마를 일이 없었을 게다. 아직 가구가 들어오지 않은 거실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휘뚜루마뚜루 탄 커피를 마실 적에 창밖에 나리던 눈을 보던 아버지는 “오늘은 꼭 맥주를 마셔야겠다”고 하셨고 나는 비싼 맥주를 사도 되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그날 처음 한 병에 6,000원이 넘는 IPA를 연거푸 들이키셨다. 어머니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않고 부엌 찬장에 그릇을 옮겼고, 더는 쓰지 않을 주방 살림을 버리러 갈 적에는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셨다. 추운 날이었지만 따뜻했다. 그날 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맥주를 마시며 ‘걱정말아요 그대’를 몇 번이나 따라 부르셨는데 멋쩍게 서로에게 전하는 수고의 말이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어쩐지 더는 이사 다닐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분명 그 노랫소리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빛나는 오늘만이 현재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색이 바랜 과거의 조각들도 현재에서 빛난다. 그 기억들이 모여 지금의 나로 살게 했으니 나는 얼마간 그 조각들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결코 그날 그곳으로 찾아갈 수는 없겠으나 바람이 불고 조금은 삶에 휘청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날의 기억들이 고향의 온기를 내밀 것이다. 덕분에 나는 다시 배가 부를 것이고, 눈을 반짝일 것이며 또 노래를 부르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