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에어백
다마스라는 차가 있다. 90년대 초반 대우자동차에서 나온 작은 봉고차인데, 재미있는 건 이 차가 1,000만 원 정도로 저렴하다 보니 에어백은커녕 에어컨이 옵션일 정도로 영 구색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짐을 한가득 실을 정도로 넉넉해 오래도록 영세 상인들의 발이 되어 온 기특한 녀석이다. 가득 물건을 실은 다마스가 그 작은 바퀴를 연신 굴리며 동네를 누비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운전하는 분의 부지런한 성품이 그려져 괜히 흐뭇해지고는 한다. 거기 실린 짐이 어디 물건뿐이었을까. 사랑하는 이들,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 마음의 부담이나 때로는 보람 같은 것들도 그 조그마한 차에 함께 실려 길을 달렸을 것이다. 별다른 옵션 따위 갖추지 못했어도, 짐은 잔뜩 싣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모습이 어째 나 사는 모양과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난다. 슈퍼카씩은 못되어도 자전거보다는 힘 덜 들이면서 어찌어찌 달리고는 있다는 사실에 늘 안도한다.
에어백이 터질 만큼 큰 사고는 없더라도 삶이 잔뜩 찌그러져 날이 꾸물꾸물한 때나 비바람이 들이치는 날, 또 진흙탕 비포장 길 같은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 와중에 든든한 안전장치마저 없다면 운전자의 몸과 실력으로 때우는 수밖에. 하여 정신 바짝 차리느라 운전 실력이 절로 좋아진다. 너무 급하지는 않게 신호도 잘 지키고, 밟을 때는 좀 밟기도 하면서 말이다. 실제 운전은 장롱면허를 간신히 면한 수준이지만, 삶에서만큼은 제법 짬이 굵은 운전사가 되어가는 것 같다. 30년 가까이 핸들 돌려가며 이제는 길눈도 훤해져 가려는 곳을 어떻게 가야할지 아는 것을 보니 말이다. 물론 여전히 잔뜩 헤매기도 하고 더러 겁이 나기도 하지만, 더디더라도 용케 다마스는 달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에어백 갖추지 못한 채라도 든든한 내 ‘빽’은 나 자신인 셈이다.
이상하리만치 스스로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쥐뿔도 없는 차로 겨우 굴러가는 주제에 무슨 헛소리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다행히, 어쩌면 조금 버겁게 이 가벼운 차가 흔들리지 않도록 짐을 실어서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 그들의 마음 씀과 그로 인한 부끄러움, 살뜰한 말들에 담긴 걱정, 삶을 아쉬워하는 이들의 쓴웃음…. 그런 것들은 묵직하게 담겨 차의 무게를 더하고, 나는 룸미러에 걸어놓은 부적을 보듯 그것들을 향해 다짐한다. 조심히, 그리고 오래도록 달리겠노라고. 물론 부적은 스스로 페달을 밟지도, 핸들을 돌리지도 못한다. 결국, 그 모든 일을 하는 건 초라한 차에 담겨 있어도 비루하진 않을 내 몸뚱어리일 것이다. 다시 운전대를 꽉 붙들고 페달을 밟아야 한다. 내가 싣고 있는 짐까지 멈추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 사는 일을 달리는 차에 비유하는 것은 꽤 진부하지만 그만큼 적절하기도 하다. 지나온 곳과 가야 할 곳, 그리고 둘 사이에는 수많은 갈래의 길과 그 위의 여정이 있다. 혹자는 달리는 일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사명이라고 하겠으나 멈출 때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또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어떻게 가느냐가 물론 중요하겠으나 어떻게든 가고는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공갈로 가득 차 빈(air)속이라도, 정말로 위험할 때는 어쩌지 늘 노심초사하면서도 스스로라는 ‘빽(back/bag)’을 믿어보기로 한다. 다시 시동을 건다. 다마스는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