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타시나요?
스스로 가을을 탄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가을이 주는 쓸쓸한 정서만큼은 좋아하는 편이다. 하여 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은 추석도, 단풍도 아닌 11월, 가을의 끝이 겨울의 시작과 맞닿는 때이다. 그리고 하루 중 11월에 가장 어울리는 때는 단연코 짧은 해가 이내 어둠으로 바뀌는 무렵이다. 소동파의 말을 빌리면 ‘추’소일각지천금(‘秋’宵一刻直千金), 가을밤의 한때야말로 천금의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처음 이 계절을 느낀 때가 언제였을까. 모든 어머니 아버지가 일해야만 했던 그 동네 외곽에, 이미 오래전 대형마트가 들어섰다던 자리에 쓸모없이 풀이 잔뜩 자란 공터가 있었다. 동네 꼬마들은 거기서 연을 날리고, 몰래 들고 온 라이터로 불을 피우고, 깡통 두 개를 세워놓고 공을 차기도 했다. 모든 풀이 누런색이 되어 바스러질 무렵, 같이 놀던 아이들이 만화를 보러 하나둘 집으로 갈 때면 그날의 놀이도 끝이 난다. 동네 아이들 모두 날이 추워지면 해가 빨리 진다는 걸 알았던 것도 같다. 나는 벌겋게 상기된 볼이 다 튼 줄도 모르고 연신 코를 훌쩍이며 저 너머 공장단지로 가는 도로와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가 겹치는 곳으로 해가 지는 걸 바라보곤 했다. 하필 아파트 단지 제일 안쪽에 사느라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해야 했던 아이의 마음에도 쓸쓸함이 어렴풋이 남았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는 집 근처 술집 간판의 불빛이 얼굴에 닿는 날 선 바람과 썩 잘 어울리게 되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6교시 수업을 마치고 대학교 정문을 나서 길을 걷고 있노라면, 짧아진 해는 지고 이내 사위가 어둑어둑해진다. 동네에 파리한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면, 잔뜩 옷을 여민 채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멍해지기도 한다. 약속도 없고 할 일도 없는데 밤은 벌써 길어져 어디로 가야 하나 발걸음이 더뎌지는 때면, 가을바람이 벌써 마음에도 들어차 늘 나다니는 길이 황량하기만 하다. 그맘때쯤이면, 겨울옷 냄새와 히터 냄새로 훕훕한 버스 안에서 차가운 차창에 이마를 대고 일렁이는 가로등과 붉은 후미등을 지켜보기도 한다. 고된 하루를 두꺼운 옷 안에 욱여넣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갈 곳 없는 것 같아 누구라도 불러낼까 연신 주머니 속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하루를 대충 보낸 사람에겐 가을밤이 한겨울보다 훨씬 길고 차다. 분명 11월은 날을 핑계로 어린 기억이나 사람의 온기를 잔뜩 그리워해도 괜찮을 게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 길어진 그림자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면, 내 신발이 십구문반(十九文半)일 리도 없는데 싸구려 모직 코트만큼이나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문을 연 집 안이 온통 새카맣다. 유독 바람이 많이 불던 그 동네의 집은 모두 그리 차가웠을까. 신을 벗다 말고 깜빡거리는 센서 등에 의지해 보일러부터 켠다. 온기라고는 없는 방 안에서 양말도 벗지 못한 채 잠시 침대에 주저앉는다. 손발이 유달리 차 11월은 손끝, 발끝에서부터 저릿하게 느껴진다. 가을밤은 온통 삭막한 것 투성이다. 나는 별도리 없이 찬장에서 꺼낸 소주로 헛헛한 마음을 채우고, 빈속에 들어간 술에 이내 얼굴이 불콰해지면 11월의 밤은 더욱 새파랗게 차가워진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에서 또 색바랜 잎이 떨어진다.
날을 핑계로 잔뜩 쓸쓸해지는 밤. 날을 핑계로 내내 혼자로 남는 밤. 옷장에서 두꺼운 옷을 꺼내다 말고 가을밤 냄새를 떠올린다. 건조해진 코 끝에 쓸쓸함이 잔뜩 배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