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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12. 2020

어쩌면 화날지도, 모르는 일 / 박브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

  글씨를 그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혼자서 이것 저것 그려 보다가 기회가 되면 주변에 가끔씩 보여주던게 전부였다. 글씨를 보아준 이들 중에는 고맙게도 근사하다면서 나중에 따로 부탁을 하던 이도 있었다. 그렇게 그려준 글씨 중 하나를 어느 공모전의 공모작들을 모아둔 웹페이지에서 발견했다. 공모전에 지원한 사람이 그 글씨를 쓴 것 마냥 올라와 있었다. 금시초문이었던데다가 괜히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들어 글씨를 선물한 이에게 바로 물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괜찮았지만, '그럴수도 있지'라는 투덜거림에 불이 일고 말았다. 진정으로 그럴수도 있는 일인지를 반문하고 이해시킬 여유가 부족하여, 공모전 주최측에 연락해 지원을 취소시키는 것으로 일단락 했다.


  사진을 찍는 지인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연락이 닿아서 촬영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사진 촬영 전문 업체를 통해 외주로 일을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을 준 업체가 SNS와 같은 온라인 채널에서의 홍보를 위해 본인의 사진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문제는 정작 온라인에 올라간 사진의 내용을 보면 업체 전속 작가의 이름이 박혀 있다는 것이다. 업체에 이야기를 해 보니, 단순한 실수라고 한다. 폴더도 파일명도 잘 정리가 되어 있어 확인하기가 너무 쉬울 뿐만 아니라, 전속 작가의 사진을 외주 작가의 사진으로 올리는 일은 결코 없으면서 말이다. 어떤 식으로든 수정을 요청하였지만, 아직도 그 업체의 SNS에는 지인의 사진이 올라와 있고, 그의 이름은 찾을 수가 없다.


  어떤 이에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은 일인 경우가 있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데까지의 역치가 서로 다른 탓이다. 그러나 서로가 관여된 일에 이런 대립이 있을 경우, 그것은 더 이상 '그럴수도 있는' 일이 이미 아니다. 누군가가 위화감을 느끼는 것 만으로 짚고 넘어가 볼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그것이 괜히 걸어 본 딴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이후의 일이다. 자꾸 무턱대고 넘기기만 하다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의문없는 융통성은 태만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때론 누군가의 입을 닫게 한다는 점에서 폭력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가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를 다룰 때 역시 그렇다. 우선 어떤 특정한 행동이 잘못이고 실수이기 위해서는, 저지를 당시에 그것이 잘못 또는 실수임을 알지 못 해야 한다. 의도가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잘못이나 실수라기 보다는 이기나 악행에 가깝다. 그래서 잘못이나 실수 자체에는 생각보다 화가 나지 않는다. 모른다고 해서 어떻게 나무랄 수 있겠는가. 알 기회가 없거나 알려준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그로 인한 물리적인 피해나 심리적인 상처를 누군가가 감수해야 겠지만, 그것은 분노 보다는 해결의 대상이다.


  진정으로 화가 나는 상황은 어떤 행동이 잘못 또는 실수임을 모른 척 하거나 모른 채로 있으려고 할 때이다. 이때 모르려고 혹은 모르고 싶어 하는 쪽은 주로 '저지른 쪽'이다. 스스로가 저지른 잘못과 실수를 스스로가 깨닫고 인정하면 이야기는 쉽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사과와 반성을 낳는다. 그런데 본인이 저지른 것으로부터 눈을 돌려버리거나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고 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피해만 남게 된다. 애초에 잘못이나 실수는 없었던 일이기 때문에 알려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오히려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을 굳이 걸고 넘어진다며 옹졸함을 문제로 삼아 오는 경우도 있다. 말이 좋아 융통성이지 타협이자 궤변이다.


  누구나 잘못과 실수를 쌓으며 살아간다. 모르고 저지르는 잘못과 실수라고 해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크고 작은 잘못과 실수에 대한 누군가의 지적, 돌이킬 수 없는 결과, 그로 인해 지불하게 되는 유무형의 대가를 통해 그것은 잘못이었고 실수였음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서는 그 깨달음이 조심성을 갖추게 한다. 그리고 어쩌면 특정한 행동이 누군가에겐 잘못이고 실수일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넓어지는 상상력이 곧 감수성이 된다. 그래서 앞으로 저지르게 될 잘못이나 실수가 두렵지는 않다. 아직 깨닫지 못한 잘못과 실수가 더 두렵고, 그런 스스로에게 가끔 화가 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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