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리 Sep 17. 2020

앎을 모르고 모름을 알 때 / 박브이

내가 무서워하는 것

  모르는 것은 궁금하기만 한 것이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알아야 한다기 보다는 알아가야 하는 시기었기에 호기심은 일종의 미덕이었다. 무엇을 알고 있는지 보다 무엇을 더 알고 싶은지가 중요했다. 그것은 무언가를 더 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또, 모른다는 것은 그저 곧 알게 될 것이기에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것일 수 없었다. 모르기에 구김없이 웃을 수 있었고 꾸밈없이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지금은 아무것도 몰라도 되던 그 때에 비해 아는 것은 많아졌다. 문제는, 아직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또한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 하나 제대로 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졌다. 그럼에도 무엇을 알고 있는지로 스스로를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할 때면 서늘한 민망함을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모르는 것은 무서운 것이 되었다. 한 없는 모름을 알게 될 때마다 구겨지고, 그런 모름을 모른 척 안다고 꾸며야 할 때마다 괴롭다.


  무언가를 모른다는 사실과 상황이 무섭다는 것에 더불어, 아직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무언가 역시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경험이나 분야, 사물, 사람을 막론한다. 새로이 무언가를 접해 알게 되는 것이 그 자체로 즐거울 때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잘 모르는 것이 또 늘어나는 것을 목격해야 하는 데서 일종의 피로를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새로운 것이 점점 꺼려지게 된다.


  모르는 것, 모른다는 것이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앎을 허무하게 만드는 데 있다. 미지는 앎에 이르지 못하고 무지로 남고 말텐데, 미지마저 끼어들기엔 일상은 이미 무지로 가득하다. 그렇게 무지가 미지를 볼 눈을 가린다. 미지를 굳이 무지로 만들지 않고, 미지인 채 두게 된다. 알아감의 끝이 결국 모름임을 견디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어른이 될 수록 겁쟁이가 되고 만다고 했던가. 문득 어른이란 많이 알게 되어서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모름을 깨닫다가 지쳐서 되는 존재이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알고 있는 것도, 알아가는 것도 전부 무서워져 겁부터 먹는 것이다. 그렇게 모르는 것을 아는 척, 아는 것을 모르는 척 서로 눈 감아주고 가려주며 겨우 어른임을 버텨내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가장 무서운 것은 어른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면 화날지도, 모르는 일 / 박브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