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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08. 2020

갑자기 생각나서 / 박브이

요즘 내가 좋아하는 단어 또는 문장

  특별한 일이 있는게 아니라면 먼저 연락하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다. 상대가 이미 일상에서 멀어져버린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그를 일부러 일상으로 데려올 때의 위화감을 유독 견디기 힘들어 하는 것도 같다. 맥락이 없는 연락이란 새로운 맥락을 만드는 일에 해당이 될텐데, 그 때 감수해야하는 번거로운 어색함이 버겁기도 하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안부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기다리는 편이 익숙한 것이라고 해 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생각이 나서'가 용건의 전부인 연락을 받을 때가 있다. 생각이 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일정한 인상으로 그들의 뇌리에 남았다는 고마움이 반가움을 더욱 또렷하게 한다. 결코 일상적인 일일 수 없지만, 그래서 답답하기 보다는 그렇기에 신선한 위화감이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상대란 이전부터 꽤 궁금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일 경우가 잦다. 그래서 이미 있었지만 보이지는 않던 유대를 말 없이 눈으로 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순한 안부의 확인에서 시작한 연락은 수다로 이어진다. 그간 공유하지 못했던 시간 동안 잘 숙성된 이야기를 맛있게 나눈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가 갑자기 서로의 일상의 일부를 차지하게 되거나 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나이가 더해질수록 각자의 일상이 짙어져 다른 색이 섞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고 그렇게 될 것임을 서로가 안다. 그래서 아쉬움을 섞지 않고 담백하게 거리를 둔다. 다시 반기고 싶은 사이이기에 두게 되는 거리이기도 하다. 그렇게 거리를 둔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일상이 멀 지언정 사람이 멀어지지는 않는다. 전부가 그렇지는 않지만, 몇몇과는 가끔씩 늘 반갑게 오래 보는 사이가 된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며, 각자의 일상을 보낼수록 각자의 위치가 뚜렷해진다. 그럴수록 서로로부터 서로에게 까지의 거리감을 괜히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서로에게 놓인 거리가 있기에 다시 반가울 수 있다. 누군가에게 그 거리가 가끔 생각이 나는 사람인 것도, 그 거리가 생각이 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참 오묘하고 감사하다. 이 거리감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잘 지내?'라는 연락은 일단 반갑다. '갑자기 생각나서'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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