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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14. 2020

보통의 존재 / 이루시엔

내가 무서워하는 것

  사람은 참 복잡하고도 모순적인 존재라,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이기를 원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눈에 안 띄게 살고 싶으면서도 아무리 발악해도 눈에 띌 수 조차 없는 존재이기는 또 싫어서 항상 그 어느 중간을 찾아왔다. 신문기자라는 직업도 그렇다. 회사원 중에서는 특이한 회사원이 되고 싶어 기자를 택했고, 기자 중에서는 최대한 대중에 노출되고 싶지 않아 글 속에 숨었다.


  평범함은 내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준다면 특별함은 내 삶에 의미를 불어넣어 준다. ‘나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느끼는 건 어쩌면 수많은 모래알 속에 반짝이는 유리알같은 특별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만의 방 속에 특별함을 하나둘씩 쌓아왔다.


  이를테면 초·중·고등학교 시절,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한 마디씩 던지는 ‘이름이 특이하다’는 말은 왠지 모르게 나라는 사람이 특별한 존재가 된 것처럼 느끼게 해줬다. 어릴 적 충만했던 총명함과 붙임성은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주목받기 쉽게 해줬다. 아버지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직업인지라 ‘누구의 딸’로 불리는 것도 내 특이한 이력이었다. 조그마한 인천 촌동네 만수동에서 큰 평수대의 집, 어릴 적 흔치 않았던 부모님의 맞벌이, 우리 반에서 제일 인기 많은 남자애와 예쁜 친구가 제일 친한 친구였던 일까지. 그렇게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오면서 난 내게 소소한 특별함을 스스로 부여했다.


  그런데 그런 순간이 있다. 이석원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는 순간.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 입시라는 큰 도전을 거쳐 성인이 되면서 딱히 특별하지 않은 ‘사람1’이 됐다.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총명한 사람들은 지천으로 널렸으며 붙임성은 뭐, 그냥 없는 수준이었다. 세상은 넓고 대단한 사람들은 많았다. 이름이 특이한 사람도 훨씬 유복한 사람들도 깔렸다. 주목받으려고 미친 짓을 스스로 벌이지 않는 이상 내 이름 세글자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클라쓰의 차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실은 현실이었다.


  그동안 쌓아온 소소한 특별함은 이미 무너진 탑이었나. 이럴 때면 하염없이 나라는 존재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무서워진다. 그래서 이석원도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노래를 쓰고 ‘보통의 존재’라는 책을 쓴 걸까 싶다. 이어폰 사이로 흘러나오는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가 귓가에 똑똑히 박히던 로욜라 동산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그렇다고 무너진 탑으로 내버려 두기엔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 그래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재미있는 일을 만들려고, 또 남들과는 달라 보이려고 안팎으로 발악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의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평범하고는 싶어도 ‘사람1’처럼 시시하고 싶지는 않은 나를 오늘도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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