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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18. 2020

평범하게, 또 평범하게 / 이루시엔

죽기 전 나에게 단 하루가 남아 있다면

  시간이 멈추길 바란다는 표현이 간절하게 될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잠을 늘어지게 자거나 별 생각없이 침대에 누워있던 나날의 자투리를 모아 새 하루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 줄은 몰랐다. 오늘은 그런 날인가보다. 잠도 안오는 자정, 29살 여름, 내게는 단 하루가 남아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눈으로 담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할머니가 담근 된장과 엄마가 해놓은 김치를 맛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자 아빠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쉬지않는 동생의 수다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그동안 세워놓은 버킷리스트가 이제 다 무슨 소용이랴. 지금까지 내가 무수하게 반복해왔던 일을 애정을 조금 더 실어 다시 반복할 뿐이다.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하고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어야 겠다. 갓 태어난 아기가 커가면서 혼자 샤워를 능숙하게 하기까지 몇년이 걸렸었지 참. 용돈을 모아 스스로의 힘으로 옷을 처음 사볼때의 기분도 잠시 더듬어 본다. 시작은 더뎠고 끝맺음은 갑작스럽다.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그동안 무엇이 아쉬웠고 무엇을 더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말은 이제와서 공허하다. 추억을 더듬는 일은 가능한한 작게, 앞으로 어떻게 지낼건지도 적게, 그냥 오늘 하루어땠고 어떨는지에 관한 대화만 나누고 싶다. 지나간 일들, 앞으로 있을 일들 모두 내겐 지금 현재보다 소중하지 않다. 짬을 내서 사랑한다느 말을 적은 짤막한 카드를 써둬야겠다. 한자한자 꾹꾹 눌러 쓴 글만큼 진정성있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 나와 터놓고 맘을 나눴던 친구들에게도 안부인사는 빠질 수 없다.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욱 내밀한 이야기를 한 이들이다. 마지막 날을 두고 얼마나 불안한지 터놓고 싶지만 마지막 날을 울면서 보내고 싶지도 않거니와 그러기엔 시간이 없다. 고마웠다고 계속 말하는 수밖에.


  나를 스쳐갔던, 내가 스쳐갔던 모든 이들을 생각해본다. 덕분에 설레기도, 웃기도, 많이했던 나날들이다. 잘 살지 말라고 온갖 저주를 퍼부었던 날도, 절대 길거리에서라도 마주치지 말라고 기도했던 날도 지금와서 돌아보면 미소만 지어진다. 평온한 날들에 조미료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하루하루 기대됐던 날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신은 믿기로 한다. 먼저 하늘로 떠난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강아지까지. 나중에 하늘가면 다 만날 수 있다는 구전동화같은 이야기가 오늘만큼은 진실이기를 바라본다. 그렇게라도 믿어야 곧 가야할 곳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삶은 소풍이라고 한 천상병 시인도 이런 맘이었을까.


  ‘서치’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다. 예전에는 죽기전 물건을 정리한다지만 2020년에 물건은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내 SNS와 휴대폰이겠지. 민망한 내용은 지워야겠다. 내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아내 나의 흔적을 따라갈 부모님을 내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초조한 지금은 자정에서 겨우 10분이 지난 시간. 오늘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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