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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22. 2020

하루의 끝 / 이루시엔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

‘지쳐버린 하루 끝 이미 해가 떴어도 난 이제야 눈을 감으니’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하면 스톡홀름 신드롬이고, 노예라 하면 노예다. 20년, 30년을 일한 사람에 비하면 아직도 새싹이겠지만, 다음날자 기사거리를 찾기 위해서 나름 4년 동안 꾸준히 새벽이나 아침까지 컴퓨터를 붙잡고 있는 모습이 꽤 뿌듯하다. 기사거리 없다고 오후 내내 징징돼도 그 다음날 아침 보고를 올리기 위해 꾸역꾸역 발제거리를 만드는 모습이 어이없으면서도 나쁘지 않다.

  집념이자 꾸준함이 마음에 든다. 무언가를 해내려고 발버둥치는 나를 보고 있자면 짠하면서도 어딘가 대견하다. 내 기억 속, 중도 포기하는 일이 좀처럼 없는 것도 스스로 만족하는 모습이다. 뭐든 끝까지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게 일이든, 사람 관계든 말이다.


‘내 하루 끝 포근한 이불이 되고’


  말 그대로, 포근한 이불 속 내가 좋다. 커가면서 단점이라고 생각한 것이 장점이 되가는 것이 몇개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잠’이다. 머리에 베개 닿자마자 잠에 드는 건 큰 축복이라고 어른들이 말버릇처럼 말하는 걸 점점 실감해간다. 이불 속에 걱정과 근심을 최대한 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첫 이별을 겪고 누군가가 더이상 내게 없다는 걸 알고 처음으로 잠을 설쳤다. 그후며칠 간 잠을 못자는 건 내게 통과의례 같은 것이 됐다. 중요한 발표가 있을 때도 잠을 설친다. 시간은 가는데 잠은 못들고 심장은 쿵쾅거리는 그 기분. 그 기분을 알고나서 이전에 있었던, 지금 보내고 있는 평범한 ‘숙면의 날’을 감사히 여기게 됐다.


‘서툰 실수가 가득했던 창피한 내 하루 끝엔 너란 자랑거리 날 기다리니’


  누군가의 자랑거리가 된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다행히 부모님부터 해서 친구들이 나를 자랑거리로 여길때의 그 눈빛이 좋다. 자랑거리가 된 순간의 나도 좋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피곤하더라도 조금 더 나를 보채는 것이려나.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다 숨 넘어가듯 웃다’


  감정표현이 솔직하다. 나를 내보여도 되겠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는 엉엉 울기도, 미친듯이 껄껄 웃기도 한다. 숨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숨겨서 뭐하랴는 생각이 강하다. 쏟아내고 나면 후련해지는 면도 있다. 이런 점이 누군가에겐 힘듦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만…

  이미 숨길 수 없는 감정표현인만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 수록 감정표현이 솔직하다’는 말을 되새긴다. 내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구절은 내가 제일 쭈그리고 있는 시절에도 방패막이 되어주더라. 너무 힘들어서 눈물을 쏟아낼 때도, 너무 짜증나서 욕을 한바가지로 퍼부을 때도 차라리 감정표현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옆에서 눈물과 웃음을 참는 사람들이 위태로워 보이지만 내가 딱히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을 땐 참.


‘그댄 나의 자랑이죠’


  작아질 때마다, 어쩔때는 스스로가 너무 커질 때마다 그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나는 나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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