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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25. 2020

무대가 끝나고 난 뒤 / 박브이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무대는 일본의 한 보육원이었다. 이사와 더불어 옮기게 된 보육이 마침 학예발표회를 앞두고 있어서, 그 준비를 하면서 새로운 환경과 친구에 적응해 나가게 되었다. 발표회의 가장 큰 순서는 모두가 참여하는 음악극 '브레멘 음악대'. 당나귀 역을 맡아 노래와 율동을 연습했다. 부모님이 찍어준 비디오로 그때의 영상을 더러 본 적이 있는데, 다른 동물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며 브레멘을 찾아 모험을 하는 모습이 티없이 즐거워 보였다.


  본격적인 무대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 오를 수 있었다. 난계 박연 선생이 나고 자란 국악의 고장 '영동'의 이름을 이어 받은 모교는, '국악 활성화 초등학교'로 지정되어 국악 관현악단 꾸리게 되었다. 부모님의 권유로 입단을 결정했고, 막연하게 고고한 멋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대금을 집었다. 처음에는 소리를 내주는 것 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던 75cm짜리 플라스틱 막대기는, 연습을 거듭해 나갈수록 생각하는대로의 음으로 울려 주었다. 사물패, 해금, 가야금, 피리, 거문고 등 다른 악기를 연습해온 친구들과 방과후의 급식실에서 첫 합주를 했다. 몇 주동안 소리를 맞추는 연습을 한 다음,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본 공연을 맞았다. 부모님과 친구들로부터 받은 꽃다발이 참 화사했다.


  기독교 계열의 재단이 운영하던 고등학교에는 매년 성가 경연대회가 있었다. 어찌저찌 지휘를 맡게 되었고, 조금 난이도가 있지만 다른 반과 겹치지 않을거라는 이유로 웅장한 느낌의 아카펠라 곡을 하기로 결정했다.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 갓 친해진 반 친구들도 재밌게 연습에 임해 주었다. 처음 화음이 딱 맞아 떨어졌을 때, 다 같이 '오~`하는 감탄사와 함께 박수를 치며 좋아했었다. 합창단 고문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하고 이런 저런 영상을 찾아 보면서, 틈날때마다 연습때 녹음해 둔 것을 귀에 꽂고 지휘를 연습하기도 했다. 내 손 끝의 시작사인을 기다리며 빛을 내던 눈동자들을 기억한다. 박수 갈채를 받으며 내려온 그 무대에서 우리는 우승이라는 추억을 얻었고, 덩달아 지휘상이라는 뿌듯함까지 받아 버렸다.


  남들보다 조금 길었던 입시 기간 동안, 대학에 들어가면 음악을 해 봐야지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음악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사와 멜로디를 만들고, 동선을 짜면서 연습을 하며 다음 무대를 기다리던 나날들이 있었다. 늘 우여곡절이 있었던 동아리 정기공연을 시작으로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을 관중으로 삼았던 길거리 버스킹부터 한 두명만이 앉아 있던 라이브 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준비했던 몇 차례의 기획공연까지 다양한 무대와 연을 맺었다. 그 중에서도 교내 가요제의 우승자 자격으로 올랐던 축제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함께 오른 친구와 빈 강의실에서, 지하 주차장에서 셀 수 없이 연습을 반복했다. 운동장을 가득 메운 수백명의 관중들이 나를 봐주고 있었고, 그 눈빛들을 머금은 나는 그 순간만큼은 분명 빛나고 있었다.


  마지막 무대로부터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내려오고 와서 보면 더 잘하지 못했음에 늘 아쉽고 분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무언가에 온전히 마침표를 찍었다는, 무대를 내려올 때의 기분은 값지다. 무엇보다도, 자칫 정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만큼 즐겁다는 기분을 무대 밖에서 경험해본 적이 없다. 무대에 오르는 상상에 살을 붙여 나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달콤해지는 때가 있다. 이렇게 또 무대가 그리워지는 것을 보면, 무대에 오르는 스스로를 꽤 좋아하고 있는 모양이다. 모든 일상의 순간과 대화 사이에서, 늘 다음 무대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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