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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26. 2020

의심은 나의 힘 / 박브이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

  언젠가 벗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여럿이 함께 대화를 나누던 어느 자리에서 무심코, 내가 의심이 많고 그것이 스스로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고 뱉었던 말이 계기였다. 벗은 그 이후로 그 말이 자꾸 생각나서 이에 대해 더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자리에서 그는, 자기 자신 역시 의심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것 때문에 늘 불안하기만 해 왔다고 토로해왔다. 그래서 똑같이 의심이 많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스스로의 힘이라고 밝힐 수 있는지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의심이라는 단어에는 어딘가 수상한 구석이 있다. 의심의 본질이 믿지 못함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믿지 못하는 것에 둘러싸인다는 것은 대단히 고독한 일이다. 그래서 의심이 많은 그 친구가 가지고 있던 불안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스스로가 받아들이는 세계, 주위의 사람들 모두 어느 것 하나 확실해질 수 없다면 ,그것은 결국 혼자만 남게 될 것이라는 복선임에 분명할테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의심은 조금 다른 방향의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의심이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인가?’라면, 내가 의심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가?’에 가깝다. 주변 세계와 사람들이 믿을만한 것, 확실해질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크게 상관이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스스로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믿어도 되는, 확실한 것이라 할 지라도 어떤 소용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위에서 말한 복선이 실현된, 이미 혼자라는 것을 전제로 한 의심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은, 스스로의 생각을 넘어 말이나 행동에 대한 의심으로도 이어진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나의 생각을 온전히 담고 있는지, 상대에게 잘 전해질 수 있는지, 오해 할 여지는 없는지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미 의심을 하기 시작해버린 이상 완벽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그렇게 겨우 밖으로 나온 말과 행동이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들과 세계에 받아들여질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무수히 많은 오해를 낳아 왔을 것이고, 앞으로도 많은 후회를 하게 될 것이며, 더 의심하게 되리라.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해야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해진다. 어차피 쌓아야 할 오해와 후회라면, 무엇이라도 해 보고 난 다음의 반성인 편이 낫다. 일종의 합리화 또는 자기 위안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무언가에 닿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라기 보다는 그것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의심이 가져다줄 때가 있다. 의심이 조심이 되는 순간이다. 스스로를 믿지는 못하지만, 그런 스스로를 의심하는 자신을 믿는 것도 같다. 이렇게 조심스러운 의심을 하는 내가 꽤 마음에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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