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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Oct 08. 2020

스페인, 홀로 따뜻한 순간 / 우드수탁

여행을 떠나요

  취업을 하면 꼭 월급을 모아 스페인 여행을 가리라 다짐했다. 대한항공의 스페인 여행 광고가 시작이었다. 자유롭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나라. 동화 같은 건축물과 시끌시끌한 마켓. 주황빛 조명이 가득한 바에서 타파스와 샹그리아 그리고 분위기 있는 재즈를 즐기는 상상.


  그렇게 입사 후 첫 5일 휴가로 스페인을 향했다. 첫 해외 여행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했던 어떤 여행보다 비장했다. 가우디의 모든 건축물을 다 보고 오겠다는 각오도, FC 바르셀로나의 메시 경기 티켓팅을 성공하겠다는 꿈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세비야에서의 3일은 유럽에서 지내고 있는 친구와 함께 하기로 했지만, 바르셀로나에서의 5일은 혼자 여행, 아니 생존해야 했다.


  국내 도시도 혼자 여행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해외를 혼자 떠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막연히 스페인을 꿈꿀 때는 없던 시나리오였다. 비행기 티켓은 끊었고, 떠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걱정하는 부모님에겐 ‘나이가 몇인데~ 혼자 건강하게 다녀올게!’라고 하였지만, 아직 혼여행 경험치 0인 초보 여행자였다. 캐리어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마음을 잘 추스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스페인어라고는 미처 공부하지도 못한 채(첫 숙소로 가는 택시를 타고서야 깨달았다), 신체 보존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스페인 동네 주민화’를 여행의 모토로 삼았기에 일정은 몇몇 건축물 투어를 제외하고는 정하지 않았다. 자기 전 탐색한 근처 빵집에서 사온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집을 나섰다. 뭔가 어색했다. 신기한 풍경을 봐도, 너무 좋은 향기를 맡아도, 아름다운 건축물을 봐도 함께 감흥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역시 동네 주민화는 어려웠다. 도대체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어떻게 쿨하게 대한단 말인가. 다행히도 혼잣말 하는 것을 그리 어색해하지 않아 혼자 ‘와…진짜…대박’을 읊조리며 바르셀로나 도심을 돌아다녔다.


  어느새 마음 내키는 대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멈추고 싶은 곳에 멈추고, 가고 싶은 곳으로 걸어 가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했다. 혼자기에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일도, 맞출 필요도 없었다. 진정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현지(現地)에서 벗어나 타지(他地)에 있는 순간. 과거와 미래는 없고, 오로지 내 기분, 내 마음만 신경 쓰면 되었다. 혼자라 외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홀로기에 따뜻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할 때 가끔 몸은 외국이지만 마음은 한국에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자꾸 현실과 끈적거리게 되는 것이다. 함께하는 여행에선 당연히 상대를 배려해야 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현실과 이어져 있었다. 물론 ‘함께’의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지만, 이번 여행에선 현실을 완전히 잊고 싶었다. 현실의 나는 취준 터널을 통과하며 겪는 쓰라림이 마음에 남아 타인의 행복에 힘껏 박수치지 못했다. 비교를 자극제로 삼아 발전하는 서울을 벗어나 오로지 내 마음에만 귀 기울이며 지낸 스페인에서의 시간은 스스로에게 주는 따뜻한 선물이었다.


  여행이란 머물지 않고 지나가기에 아름다운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멈추면 곧 피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스페인을 지나며 나는 가장 자유로운 여행을 했다. 오로지 나를 위하는 자유로운 여행, 그저 나로서 즐거웠던 시간들은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었다. 앞으로 마주할 현실 앞에서 쭈그려질 때 스페인을 지나왔던 내가 말한다. “지금도 충분히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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