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리 Oct 22. 2020

우드스탁과 선처럼 나란히 누워 / 우드수탁

필명의 기원

  우드수탁. 처음 들으면 산 속에서 목탁 치는 모습이 떠오를지 모른다. 음악에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의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좋아하나 싶을 것이다. 아쉽게도 둘 다 아니다. 우드수탁은 스누피에 나오는 ‘우드스탁’ 캐릭터에 내 이름을 일부 섞은 필명이다. 스누피하면 ‘스누피’와 그 친구 ‘찰리브라운’이 메인이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노란색 털뭉치였다. 모르시는 분도 있겠지만, 스누피 옆에는 항상 노란색 털뭉치 친구가 함께 있다. 대사나 표정도 거의 없다. 그저 스누피 옆에 작은 악세사리처럼 붙어있는 노란색 새(알고보니 그 캐릭터의 종은 ‘새’였다)가 항상 더 마음을 끌었다.


  솔직히 우드스탁을 필명으로 삼은 것에 대단한 의미는 없다. 우드스탁이라는 캐릭터를 심도 깊게 이해하고 있지도 않다. 스누피 만화를 제대로 본 적도 없고, 어릴 때 영어 만화로 몇 번 보고 이후엔 짤이나 이미지로 본 것이 전부다. ‘그냥 귀여워서’가 어쩌면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전부는 아니다. 예전부터 스누피에서는 우드스탁, 푸(Pooh)에서는 피글렛, 짱구에서는 흰둥이에게 끌렸다. 메인 캐릭터 옆에 있는 조그맣고 조용한 친구가 왠지 모르게 더 정감갔다. 아무래도 좋아하다 보니 사심을 조금 섞어서 말해보자면 몸은 조그맣고 귀여우며, 메인 캐릭터를 성의껏 돕는 넓은 마음을 가졌다.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다니는 메인 캐릭터와는 다르게 평화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다. 그저 지붕이나 풀 숲에 누워 즐거운 상상을 즐기며 지내는 듯한 모습이 ‘소소한 즐거움’을 지향하는 내 인생 목표와 닮았다.


  필명은 글을 통해 보여지는 또 다른 '나'다. 요즘 트렌드라 하는 '부캐’ 정도가 아닐까. 사실 영화나 소설 속 인상 깊은 캐릭터 네임을 따올까도 고민했지만, 필명으로 가져오기엔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영화나 소설 속 캐릭터들은 스토리를 통해 입체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해, 오히려 그 캐릭터에 묶여버릴까 겁이 났다. 마치 ‘그 캐릭터라면 좀 더 시니컬하게 글을 쓸 것 같아’ 라고 글로 연기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상대적으로 조금은 평면적이고 단순한 캐릭터가 있는 애니메이션 중에 고르기로 마음먹었다.


  그 중에서 굳이 우드스탁이었던 이유는 요즘의 내가 주말이면 최대한 뒹굴거리는 것이 일상이고, 그런 모습이 우드스탁의 라이프와 조금은 닮아있다고 느꼈다. 물론 상상이지만, 우드스탁은 대단한 이상을 품기보다는 일상에서 즐거운 일을 찾아내 혼자 지붕에 누워 곱씹고 있을 것 같았다. 매일 같이 내가 하는 짓이다. 지붕에 누워 하늘을 보며 흥얼거리며 우울함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우드스탁이 내가 꿈꾸는 라이프기도 하고. 종종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우드스탁처럼 그냥 누워서 하늘만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을 정도다. 물론 이런 모습이 내 전부는 아니지만 내 첫 ‘부캐’ 정도의 영향력은 있다.


  필명을 지을 때보다 1년 전이면, 혹은 1년 후라면 전혀 다른 필명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약 4달 전의 나는 우드스탁과 가까웠다. 사실 지금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우드스탁이라는 캐릭터에 현실을 묻혀 ‘스’를 ‘수’로 바꾸었는데 지금은 사실 스나 수나 무슨 차이인가 싶다. 언젠가는 다시 우드스탁과는 멀어지고, ‘아이언맨’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만은 우드스탁이라 불리고 싶다. 그저 날 좋은 들판에 우드스탁과 나란히 누워 하늘을 눈에 담고, 즐거운 일을 노닥거리는 오후를 상상하며.


  우드스..수탁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인, 홀로 따뜻한 순간 / 우드수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