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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Oct 31. 2020

Ctrl + V : 나를 붙잡아준 문장들 / 박브이

내 삶의 에어백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나를 위해 준비된 자리임에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조건들이 잘 들어 맞는, 작지만 강한 회사였다. 크고 작은 실수를 쌓아가며 생소했던 세계에 적응해 나갔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은 언제나 그렇듯 즐거웠다. 개인이 아닌 회사로서 스스로를 소개하게 되기도 하고, 그렇기에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트너사를 방문하기 위해 수행 역으로 참가했던, 호의로 가득했던 첫 해외출장을 기억한다.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실제로 상품이나 행사와 같은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어 가는 것은 꽤나 손맛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다채롭고 감사한 경험들이었다.


  힘을 너무 잔뜩 주고 다닌 탓일까. 언제부턴가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을 잘 마무리했다는 보람을 느끼기 보다는 더 잘하지 못했음에 부족함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 먼저였다. 회사에 다니면서 앞으로 해 나갈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보다, 여태까지 하지 못한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분명 건강하지 않은 신호였다. 상사이자 선배인 이들이 이미 쌓아놓은 시간은 이제 막 업계에 발을 들인 풋내기에게는 너무나 아득해서 멀미가 나는 듯 했다. 그게 무엇이든 잘 해낼 것이라는 입사할 때의 믿음이 무색하게, 조급함과 부담감이 내 시간을 갉아먹었다. 무엇보다 남들에게는 물론 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스스로가 너무도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유는 줄고 호기심은 좁아졌다. 나는 분명하면서도 급격하게 소모되고 있었다.


  그렇게 옅어져만 가는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짙어져 일에 제대로 몰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지금까지 해 왔던 괜찮을 거란 자기위로는 안일했던 것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함과 미안함을 담은 인사를 건네고 회사를 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침은 밤이 되고, 아무리 붙잡아도 밤은 다시 아침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해야 되는 것이 없어진 시간동안,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 가득 차기 전의 나를 다시 기억해내는 것을 단 하나의 하고 싶은 것으로 삼았다. 여기저기 조각나 흩어져 있던 스스로를 주워 짜맞추는 작업이기도 했다. 부지런히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니고, 게임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라는 것을 아직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안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제 또 다시 망각하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른 꿈을 꾸기에는 단순히 파편을 모아두기만 한 것 같아 위태로웠다.


  그러다 책장에서 노트 몇 권을 꺼내게 되었다. 표지에 'Ctrl + V’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노트였다. 안에는 시간이 남아돌던 군시절부터 읽은 책에서 마음에 와 닿은 문장들을 옮겨 적혀져 있었다. 옮겨 적다 보니 재미가 붙어 그 전에 읽은 책들도 다시 찾아 읽으면서 하나 둘 페이지를 채워 나갔던 것이 기억이 났다. 문장에 쓰인 단어의 울림이 좋아 적은 것도 있고, 여러 문장에 걸쳐 담긴 내용이 아까워 문단 째로 적은 것도 있다. 책 한 권을 다 읽을 여유가 없을 때면 복습하듯 가볍게 꺼내 읽었더랬다. 그러고보니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읽은 책이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자연스레 노트를 꺼내게 되는 횟수도 점차 줄어 들다가 아예 잊어버리게 되었다. 어디선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던 것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시간이 날 때마다 ‘Ctrl +V’와 새 노트를 하나 가지고 가서 깨끗하게 옮겨 적었다. 다시 몇 권으로 정리된 노트 안의 문장들에는 문장 이상의 것이 담겼다. 감기처럼 잠시 꾸었던 꿈, 잠을 쫓아버릴 정도의 설렘, 관자놀이 양쪽을 관통 당한 듯이 얻게 된 깨달음, 하고 싶었던 말이 대신 쓰여있던 한 줄로부터 받은 위로까지. 어쩌면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순간에 문장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눈이 머물러왔던 시선과 겨우 입 밖으로 꺼내어왔던 단어, 담배 한 대와 맞바꾼 사소한 사색은 노트 안의 문장과 조금씩 닿아 있었다. 각각의 문장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라기 보다는, 사건과 사건 사이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맥락이나 복선과도 같았다. 그렇게 한 번 산산이 조각이 났던 파편 사이사이를 문장들이 붙들어주고 있음을 확인했다.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또 한 번의 퇴사를 겪었고, 예정하지 않았던 휴식을 만끽하다가 지금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 동안 ‘Ctrl +V’를 몇 번은 다시 읽었고, 새로운 페이지도 수십 장이 더해졌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발목에 힘이 고이기는 한 것 같다. 얼마 전에는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 ‘나를 뺀 세상의 전부’를 읽었다. 곁에 두고 싶은 문장이 거의 매 페이지마다 있을 정도로 반가운 문장들이 많았다. 또 다시 만난 이 감사한 문장들을 조금씩이라도 천천히 닮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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