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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Nov 15. 2020

서른은 처음이라 / 우드수탁

서른 즈음에

  ‘서른’과 ‘나이’. 서른을 코 앞에 두고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은 단어들이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느새 머릿속에서 반성문을 쓰게 만든다. ‘네. 제가 열심히 살지 않았고, 아직 요지경입니다’. 대체 서른이 뭐길래 다들 계란 한 판을 주며 기념(?)하고, 꺾였다는 말을 듣고, 부담을 쥐어 잡게 되는 걸까.


  시간은 흐를수록 가속을 붙인다. 삼십 대를 코 앞에 두고 나니 20대 후반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20대 초반은 새삼 생생하게 느껴진다. 2020년은 코로나 언제 끝나?를 중얼거리다보니 어느새 11월이다. 곧 서른임을 상기하면서 자꾸 지나간 20대를 돌이켜보는데, 추억이야 넘치는데 성취는 있나 어느새 자문하고 만다. 원하던 바를 이루었는가 하면 딱히 그렇지 않다. 원하던 바라고 하면 스스로 세운 서른이 되었을 때 어느 정도 이루었어야 하는 기준이다. 어떤 사건도 영민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노련함과 자리 잡힌 커리어, 재정적인 안정성 등이 그것인데 도대체 뭐 하나 이룬 것이 없다. 출근길마다 ‘GOD-길’은 새삼 명곡임을 깨닫고, 재정 관리의 ㅈ자도 모르는 수준이다. 노련함이야 말할 것도 없이 멀었다. 여전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겠으니까.


  서른의 기준을 채우지 못한 미달 학생인 지금은 크게 개의치 않으려 노력한다. 모범생이 되지 못할 바에 반항아가 되겠다 같은 심리도 있고 90년대 서른과 2020년 서른의 포지션이 다름도 알고 있다. 누구나 어릴 적 그렸던 서른의 스케치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 스케치를 명확하게 따라 그리며 그림을 완성해내고 있는 사람을 아직 마주한 적이 없어서인지,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진다. 원래 스케치라는 게 첫 지우개질이 어렵지 한 번 대면 그 이후는 쉽다. 이렇게도 지우고, 다시 저렇게도 그려보게 되었으니까. 되는 대로 살았다기보다 그 스케치에 맞춰서는 도저히 행복할 수 없다고 느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그렇지만, 행복의 기준이 달라지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이십 대를 어릴 적 그렸던 스케치를 하나씩 지우고 고쳐나갔는데 여전히 여기저기 선을 뻗치고 수정하고 싶은 기분이다.


  인생의 스케치는 완성하지 못한 애매한 서른이지만 사회는 그들만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바라볼 것이다. 구분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너도 이제 앞자리가 3이라며 나누고, 언젠가는 후배들에게 90년대에 태어난 사람은 집에 가세요~라는 말을 듣겠지. 스스로 아직 미완성이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별개로 철이 지났다는 듯한 그 말만은 아직 쿨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멋있게 나이 든다는 것은 시간의 매정함을 인정하고 성숙해지는 어른의 모습일테지만, 나에겐 아직 밑그림도 못 그렸는데, 화가가 되라는 말로 들릴 뿐이다. 아직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한 철이라 믿는다. 서른도 서른여덟도 마흔다섯도 쉰도 그 나이는 한 철이고, 또 유일한 시간들이 아닌가.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도 처음 마주하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시간이니, 여전히 서툴고 어렵다. 서른도 다르지 않다. 서른은 처음이니까, 처음인대로 서툴고, 부족하고, 여기저기 휘청거릴테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걱정하기 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시간들을 더 아끼고 소중히 하며 지나가는 것이 초심자로서의 최선이 아닐까. 귀에 Kool&The Gang의 ‘Celebration’을 꽂는다. 서른아, 만나서 반가워. 다시는 못 만날 한 해를 같이 멋있게 만들어보자. Celebration! We’re gonna have a good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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