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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Nov 20. 2020

매운맛 미드필더 / 우드수탁

좋은 친구의 모습

  마음이 고단한 날이 있다. 보통 혼자 마음을 누이고 찬찬히 뜯어보거나 잊혀질 때까지 외면하는데 도통 미궁이거나 외면할 수 없는 문제를 마주한다. 그럼 어느새 통화목록 위 쪽에 항상 자리해있는 친구들에게 쏟아낸다. 혼자 끙끙대던 문제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가닥이 잡히고, 위로나 조언이 방향표를 보여주기도 한다.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지칠 때까지 통화를 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기상부터 수면까지 일상을 주고 받는다. 대부분 1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는 사이니 무슨 말을 할 지 무슨 마음일지 어느 정도는 읊어낸다. 친구도 마찬가지로 내가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의 숨은 뜻까지 그려낸다. 이쯤 되면 알았어, 너네 절친이네 절친 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친구 포지션에서 수비와 공격을 헤맬 때다.


  따지자면 나는 공격수에 가깝다. 상대의 고민을 들으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지부터 떠올려 버리는데 확실히 수비는 아니다. 딴에는 상대의 고민을 함께 덜어주고자 귓동냥과 경험을 버무려 이런 저런 방법을 제시한다. 감정 이입은 잘해 우울한 고민을 들으면 며칠이고 같이 심란해하기도 한다. 나름대로 적절한 포지션에서 친구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즈음 어쩌면 자살골을 넣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격의 성격이 그러하듯 생채기가 나기 쉽고 가끔은 문제에 몰두해 아픈 곳을 찔러버린다. 대부분 친구에게 말하는 고민이라는 게 인생의 진리를 구하기 보단 스스로 내린 답에 확신을 얻고자 하는 경우가 많음을 안다. 그럼에도 이윽고 친구가 놓친 곳을 찾아내 앞으로 나아가라고 종용하고 만다. 친구로서 해야 할 말을 한 거라고 자위하지만 그저 들어줄 걸 하고 후회에 빠진다. 어쩐지 악역을 자처하고 있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이상한 컨트롤 욕망이 있는 건지 함께 나름의 답을 내렸는데 전혀 다른 답을 제출하는 걸 보면 꽤나 섭섭해져 버린다.


  친구란 모름지기 경청은 기본으로 나눔이 그 역할의 끝이 아닐까. 아무리 가까워도 각자의 인생이며 끝까지 책임져줄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으니까. 부모님도 못하는 것을 친구가 하겠다고 깔짝대는데 사실 수비하라고 친구 시켜놨더니 자꾸 공격수 하겠다고 떼쓰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본인도 가끔은 그저 원하는 답을 듣고자 친구에게 수비 전화를 걸었는데 너무 정확해서 가슴 아픈 답을 들으면 마음이 아플 때도 있으니까.


  물론 사탕 발린 말만 하는 것은 사회 생활의 영역이고 우정은 쓴 약을 건내줄 필요도 있음을 안다. 가끔 친구의 후회를 들으며 당시 악역을 피해 듣기 좋은 말만 내뱉은 것을 후회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친구는 그 후회의 곁에 서서 그저 괜찮아질꺼라고, 나아질꺼라고 응원의 말을 건내주는 것이 진정한 포지션이 아닐까. 여전히 공격과 수비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성격상 사탕보단 약을 맥여버리지만 말이다.


  축구 경기를 보다보면 공격수의 존재감이 어마어마한데 수비는 잘하면 본전, 못하면 욕받이다. 센스있는 공격수와 묵직한 수비 사이 미드필더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은데 사실 친구란 결국 미드필더에 가깝지 않을까. 각자가 향하는 골대가 다르기에 경기 전체를 조율하기 보다는 그저 골을 잘 넣을 수 있도록 패스를 잘 넣어주는 정도의 포지션. 여전히 매운 맛을 내뿜을 때가 많지만 친구에게 진심만은 확실한 수비형 미드필더를 꿈꾼다.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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