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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Nov 26. 2020

뜨거운 마음은 가고 남은 건 사진 뿐 / 우드수탁

사진 같은 순간

  D-48. 크리스마스가 48일이 남았다. 11월 초에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었다고 하면 대부분 벌써부터 무슨 크리스마스냐고, 대단한 이벤트가 있냐고 할 수 있다.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한 해의 끝자락 쯤에 조금 일찍 흥에 겨워하고 있을 뿐이다.


  산타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가 그렇듯이 올 해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등등 기억에 남는 일을 손꼽아 본다. 그저 출근과 퇴근 그리고 사이사이 마스크 낀 코로나 정도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사라진다. 2020년, 너 정말 이렇게 삭막했냐. 결국 핸드폰을 들어 사진첩을 뒤적거린다. 구글 포토는 똑똑하게도 올 해의 이벤트라며 여행이나 사진을 유독 많이 찍은 날의 앨범을 만들어준다. 앨범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영상까지 재생해보다 보면 어느새 작년 크리스마스 타임에 멈춘다. 꽤나 즐거웠던 추억들 그리고 소중했던 사람들을 곱씹어보고 나서야 한결 마음이 놓인다.


  사람은 언제나 지우고 비워내며 살아간다. 가끔은 기억이 무뎌지는 것만큼 사람에게 친절한 기능이 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네잎클로버를 코팅해 주머니에 넣는 마음처럼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할머니가 소녀처럼 웃는 순간, 익숙한 공간에서의 낯선 그래서 아름다운 순간, 친구들과 한창 수다를 떨다 우스꽝스럽게 담아낸 순간, 기 막히는 음식을 마주한 순간. 그런 순간을 마주하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어 세상 정성스러운 몸과 마음으로 담아낸다. 그렇게 담아낸 순간들은 사진으로 남아 단편의 장면에서 언제라도 서사를 풀어내고 마는 나니아연대기의 옷장이 된다.


  모든 사진들이 남아 추억으로 이끈다지만 그 중에서도 지인이 담긴 사진이 제일이다. 대학생 때 친구와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서로보다는 풍경을 담아내기 바빴다. 지나가는 과일 가게도 새롭던 그 곳에서 유일하게 새롭지 않았던 서로가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그럼에도 최근까지 꺼내어 보는 사진은 결국 그 와중에 몇 장을 담아낸 친구와 나의 사진이다. 마치 집시의 모습을 하고 패션이라고는 알프스 산맥에 던져버리고 온 것 같은 모습이지만 결국은 서로의 사진에 오래 머물게 된다.


  물론 풍경이나 공연, 사물을 담아낸 사진들도 인상적이지만 함께 시간을 공유한 사람만큼 강렬하진 않다. 개인적 소견이지만 풍경은 그 순간에 들려오는 소리, 바람, 향기를 오감으로 치열하게 담아내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니까. 카메라 성능의 한계를 느끼고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끈질기게 담아내는 순간. 때론 감동에 빠져 몰두하고, 그저 젖어 드는 시간들은 감히 카메라 렌즈로는 담길 수 없다. 물론 몇 장면을 담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진 속 감흥은 다시 달아오르지 못하고 밋밋해져 버리고 만다.


  소중한 추억은 사진을 통해 남긴다. 그러나 사진으로 남아 더 소중해지고야 마는 추억이 있다. 그저 일상이던 순간이 언젠가는 추억이 되고야 마는 것처럼 사진은 더 많은 일상을 소중하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치 흩어져있는 감정은 글로 묶어둔다면, 사진은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는다. 그렇게 붙잡아 언제라도 과거의 그 순간으로 되돌려버린다.


  잔나비의 노래처럼 뜨거운 밤은 언젠가 지나간다. 그럼에도 그 밤을 붙잡아 둘 수 있다면 그것은 뜨거움을 고스란히 담아낸 사진 한 장이 아닐까. 가을은 온 듯 만 듯 흘러가고 곧 캐롤이 반가운 계절이 다. 흘러가는 가을을 붙잡기 위해 하늘과 단풍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을 담아낸다. 애정을 듬뿍 담아 찍은 한 컷은 언젠가 마법의 옷장이 되어 다시 이 순간으로 불러들일 것임을 안다. 다시 마주할 이 순간에 사진 속 우리가 여전히 우리이기를 소소히 바라며 오늘도 나는 카메라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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