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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Dec 06. 2020

씀과 요리 / 우드수탁

  생각이 많은 편이다. 생각이 깊다기 보다는 이런저런 상상을 즐긴다. 전혀 관련 없고 일어날 가능성이 0%인 상황에 이입해 이런 저런 경우를 가정한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시간들이라 할 지 모르지만 꽤나 단조로운 일상에 가상 MSG를 뿌려 감정을 환기시킨다. 상상력과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가끔 무릎을 탁 치는 순간에 가 닿는다. 기록하리라 다짐하지만 어느 새 기억에서 증발해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나 일상의 중심을 이루는 무언가를 한다. 돈을 버는 ‘일’일 수도 있고, 미래를 위한 ‘투자’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월 40시간 이상의 일상이 ‘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시간들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유난히 힘들게 다가올 때는 사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더 격렬히 몸부림친다. 퇴근 후 머리를 공(空)의 상태로 만들고자 애쓰며 무의미한 모든 것을 향유한다. 조금이라도 의미가 남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뤄둔 채, 유튜브와 넷플릭스, 게임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하는데 곧 일에서 제대로 벗어난 것이 맞느냐는 질문이 떠올랐다. 사적 일상이 그저 무의미한 모든 것이라면 나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의심과 함께.


  그렇게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지나가는 뜬 구름이라도 잡아 글자로 엮어둔다면 언젠가 추억으로 남아 웃음짓게 하지 않을까. 그저 떠다니는 부표에서 바다 아래로 닻 하나를 내리듯 무게중심을 잡을 수 있으리라. 대체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끄적거리다 보면 물렁했던 마음이 꽤나 단단해짐을 느낀다. 글을 씀에는 저마다의 이정표가 있을 테지만 나에게 씀이란 밖보다는 안을 향하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가보지 못한 생각을 들여다보고, 그저 흘러가던 상상에 치열함을 더한다. 생각이 냉장고 안의 재료라면 글은 완성된 메뉴리라. 그렇다면 씀은 결국 요리(Cooking)에 가까운데 역시 어려웠다.


  한번도 냉장고를 제대로 들여다 본 적 없고, 꺼내어 요리를 해본 적도 없었다. 대학생활에서 가끔 글을 썼지만, 그건 허기를 채우기 위한 인스턴트 삼각김밥 정도였다. 물론 실제 음식 요리와 다르게 씀에는 백종원 선생님이 없다. 유시민 선생님 정도일까 싶지만, 경지의 차이를 느낀 채 주저앉는 경우가 많았다.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생각한다는 자의식도 옅어졌다. 표현력의 한계에 부딪히고, 더 깊게 내려가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한다. 그저 감상이 다였던 글도 이제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라는 생각에 다른 의미로 감탄한다. 작가들의 일상이 궁금해지고, 대체 그들의 경험치와 스스로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른 건지 가늠도 해본다.


  나만을 위한 글쓰기, 요리를 하고 있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시작은 분명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었는데 어느새 누군가의 허기도 채워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길이 더해졌다. 지나가다 잠깐 맛보았는데 어떤 의미로의 배고픔을 덜고 따뜻한 요리가 되어준다면 그보다 뿌듯한 일이 있을까. ‘주간 ㅅㅁㅅ’라는 김상민님의 주간 글쓰기를 구독하고 있는데 월요일 저녁마다 메일을 통해 받는다. 어느새 월요일 저녁을 기다리고 훈훈한 저녁 식사가 되고 있다. 아직 본인의 글은 허기를 채우기에도 부족한 요리일테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의 겨울 붕어빵 정도가 될 수 있기를.(다들 주머니에 잔돈 넉넉히 모아주세요) 그렇게 ‘씀’을 통해 풍부하고 따뜻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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