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리 Dec 24. 2020

로그아웃 / 우드수탁

게임

  

 게임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PC방의 화면을 똑같은 배경으로 채우던 게임들은 대부분 해봤고, 스마트폰에는 아직도 장기 근속 게임들이 있다. 게임을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승패가 나뉘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이기는 것에 짜릿한 쾌감이 있고, 지는 것에 묘한 승부심이 발동함이 게임의 트리거임을 아는데, 어쩐지 자꾸 방관자 포지션에 서있는다. 누군가를 이기고 지기보다는 혼자만의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더 행복하고, 게임 속 평화주의자가 웬 말이냐마는 항상 스스로를 그렇게 지칭했다.


  사실 게임이란 것이 가상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도 무수한 게임이 플레이 되고 있다. 단일 프로그래머에 의해 계획되는 가상 게임이 아닌 다수가 최선을 향하여 달려가고, 그 안에서 선택한 결정이 타인에 의해 최악이 될 수도 있는 현실 속 게임들 말이다. 일명 ‘게임 이론’이라고 명명되는 현실 게임이다. 이 중에 가끔은 게임이 아니길 희망하는 순정한 마음들이 있다. 의사 결정이지만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하는 행동들, 우정, 사랑, 애정어린 관계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관계들 속에서도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예능에서 누군가 ‘섹스는 게임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시엔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냐며 순수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어쩌면 꽤나 솔직한 발언이었다고 공감했다. 그 분이 말한 섹스게임과는 조금은 다른 결이지만, 관계 안에서 혼자 게임을 하고 있었다.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방어막을 치고, 상대가 가장 아플 것 같은 곳을 찌른다. 하지만 적군이 아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아군이었던 사람, 아픈 곳이 어딘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의 치부를 찌르고 있다. 그렇게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언제나 마음을 무장하며 지냈다.


  모든 관계에 갑 을이 있다는 말은 곧 위너와 루저가 있다는 뜻이다. 관계가 지속될 때, 갑은 언제나 위너가 되고, 을은 언제나 루저의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모든 게임에 역전이 있듯이, 관계가 끝나면 승패가 새롭게 정의된다. 승자는 곧 패자의 기분을 느끼기도, 패자는 승자처럼 유유히 자리를 떠버리기도 하니까. 관계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전략이 진흙탕에 빠져 그저 이론으로만 남아버린다. 그렇게 탈 게임이 되어버리고, 그 게임 안에서 존재하던 캐릭터들은 그저 서로의 null이 되어버린다.


  처음부터 열까지 열과 성을 다한 진심이었던 시간과 반대로 제갈공명이 되겠다며 전략적인 게이머였던 시간을 지나왔다. 관계란 게임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현재의 지론이다. 게임에는 모름지기 승패와 리셋이 매력인데,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으면서 또 그렇게 계산적이지 못하다. 끝났다고 기억에서 깨끗하게 리셋되지도 않고, 합리적인 선택도 대부분 합리화의 산물일 뿐이었다. 지금 무수한 사람과의 게임 속에서 로그아웃 상태다. 물론 누군가는 지금도 게임을 하고 있고, 심지어 누군가는 나를 NPC로 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한 발 떨어져 캐릭터가 아닌 사람으로서 다가가고자 한다. 게임 로그아웃, 인간 로그인 중.



매거진의 이전글 씀과 요리 / 우드수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