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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Jan 09. 2021

시즌 1 / 우드수탁

2020을 보내며


  “내 달력은 끝이 아니라고. 32일이라고 33일이라고” 새해 초 세기를 할 때쯤 장난스레 내뱉던 ‘12월 32일’의 가사다. 12월 마지막 주가 되면 마치 전 애인을 떠나 보내 듯 올 해 스스로에게 못 해준 것들을 하나 둘 떠올리게 된다. 그리곤 아직 새 인연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궁시렁거린다. 그렇게 한 해의 끝자락에서 질척거리며 친구들과 “내년에나 보자”라는 농담으로 마무리한다.


  특히나 올 해는 전 세계인에게 ‘12월 32일’을 읊조리게 하는 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꽤나 바쁜 약속들로 보내던 연말도 집에서 향초와 스피커 그리고 도둑 없는 ‘나홀로집에’였다. 물론 오프라인 만남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충분히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약속으로 향하는 길의 설렘 그리고 헤어지기 아쉬워 2차, 3차 장소를 급히 알아내던 감성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이렇게 뭐 해보지도 못하고 끝난다고?’의 허무함과 366일 중 300일 정도를 코로나에 전전긍긍하며 보냈다는 허탈함이 더해져 전 세계에 2020년_ver2를 제안하고 싶을 정도다.


  아쉽고 허탈한 마음과는 별개로 올 해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분기점 같은 한 해일 것이다. 개인적인 일상의 변화만 해도 교과서에서만 보던 재택 근무와 화상 회의가 일상으로 녹아 들고 인기 드라마를 챙겨보듯 9시면 모든 사람들이 집으로 복귀한다. 5명 이상 집합 금지에 우리 가족이 몇 명이었더라 다시금 세보기도 하고 도로 위는 오토바이 반 자동차 반으로 제 2(3?)의 오토바이 강국이 코 앞이다 싶다.


  일상은 움직이지 않는 지도 위 그저 빨간 점으로 존재하지만, 국가적 아니 세계적 재난 사태에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매주 심화되는 거리 두기 강도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일일 확진자 그래프에 불안한 마음이 터져나와 갈 곳을 잃다 결국 특정 누군가를 향하는 것이다. 몇 번 확진자라는 숫자, 종교, 취향, 성향까지 개인에서 일반화라는 눈사태가 되어 집단으로 분노가 번져갔다. 불안과 분노는 꽤나 가까운 거리에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그 분노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도 누군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작은 행동이 번져 노인분들이나 아이들이 이겨내지 못하고 스러져 가는 것을 보면 가슴 속 마그마가 부글댄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려운 역사적 순간 속 뭉클한 한 장면처럼 여전히 인간에 대한 애정과 희생을 보여준다. 숨 막히는 마스크와 방역복 속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의료진분들, 역학 조사와 실시간 알림으로 과로하고 있을 공무원분들, 생활고에도 규칙을 준수하며 일하고 계신 자영업자분들 등 여러 주인공이 역사적 장면을 만들고 있다. 근현대사 책에 실리는 잔인하고 비인륜적인 역사 사건들 속에서도 우리는 인간애가 피어 오르는 장면에서 감동을 느낀다. 영화에서도 서로 핏대를 높이는 인물은 단역일 뿐이며, 희생과 배려로 인류를 구원하고 결국엔 생존하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남는다.


  코로나로 점철된 올 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희일비하지 않는 평정심을 가지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분노에 찬 댓글과 마주했고 문 닫은 가게들과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 갈 곳 잃은 취준생들을 떠올리면 힘든 한 해였음은 분명하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어둠 속에서 마주하는 새 해는 마치 찜찜한 시즌 1을 끝내고 다음 시즌을 앞둔 마음과 같다. 실망스러운 시즌 1이지만 그래도 시즌 2에는 마음에 드는 결말이 나올 거라는 희망을 안고 화면 앞에 앉는 것처럼 2021년을 마주하는 것이다. 코로나 시즌 1, 2020년의 주역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시즌 2에는 꽤나 개운한 결말이 펼쳐지기를 소망해본다. 시원하게 외치지는 못하지만 2020년 엔딩 크레딧의 모든 사람들과 스스로에게 격려를 보내며 시즌 1,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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