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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Nov 04. 2020

항주의 Lost Stars / 우드수탁

가을, 타시나요?

  밤에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밤에 가을과 제일 처음 마주친다. 올해도 어김없이 꽤나 끈적거리고, 눅눅하던 장마를 지나 시원해지던 어느 밤에 가을을 마주했다. 생각보다 걸음이 길어지고, 하늘을 보며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그 순간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애덤리바인의 ‘Lost stars’.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어느새 중국에서 스쿠터를 타고 달리고 있다.


  중국 항주에서 1년 정도 유학을 하며 꽤나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떠나 혼자 해외에 지내다보니 잔소리하는 사람도, 성적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물론 모든 유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철없던 그 때의 나는 대학생활 중 마음껏 놀아도 된다는 자격이 주어진 것처럼 즐겼다. 물론 도착하자마자 가벼운 마음이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마주했던 중국 항주는 황량하고, 삭막했다. 아무래도 땅이 크다 보니, 건물과 도로가 넓어서이기도, 중국어에 미숙해 돌아다니기 불편해서였겠지. 그래도 1년 남짓의 시간 동안 자전거를 구매해 달리다, 어느새 중고 스쿠터를 구매하고 있었다. 사실 운전 면허도 없는 나에게 위험한 도전이었지만, 곧 스쿠터는 내 발이 되어 항주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스쿠터를 구매할 때가 여름의 막바지였다. 그 때 한국엔 이미 영화 ‘비긴어게인’이 흥행을 하고 있었지만, 중국에서의 나는 한 발 느렸다. 항주 영화관에서는 ‘비긴어게인’이 개봉하지 않았고, 한국에서의 상영을 접고 인터넷에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가을이 시작될 즈음 ‘비긴어게인’ 영화를 볼 수 있었고, 보자마자 그 영화의 노래와 분위기에 반했다. 영화에 삽입된 모든 노래가 귀에 맴돌았고, 영화의 쓸쓸한 분위기는 항주의 가을과 닮아있었다. 항주의 가을은 숨막히게 습하던 여름을 지나 건조했고, 그 계절과 맞물려 어느 새 앨범 반복 재생에 빠졌다. 모든 노래가 좋았지만, 대표곡인 ‘Lost stars’는 그 시절 나의 대표곡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꽤 쓸쓸하고 우울했던 듯 하다. 노래 가사 중 “God, tell us the reason why youth is wasted on the young”이라는 가사에 꽂혔던 것 보면.


  그렇게 항주의 가을을 스쿠터 위에 ‘Lost stars’를 귀에 꽂은 채 달렸다. 주로 선선한 밤에 혼자 스쿠터를 몰고 나와, 차도 사람도 없는 큰 도로를 혼자 달렸는데 목적지를 두고 달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어디로 가는 지 모른 채 신호등을 타고 달리면,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거리의 공기가 바람에 응축되어 휘몰아치는 기분이었다. 노래의 가사 그대로 젊음을 온 몸으로 낭비하며, 가을 바람과 함께 들려오는 애덤리바인의 쓸쓸하기도, 뜨겁기도 한 그 목소리는 마음 속에 깊게 울렸다. 그 때의 나는 평생 맞았던 어느 가을보다 가을을 더 깊게 그리고 온 몸으로 느꼈다.


  항주에서 스쿠터를 타고 달리던 자유롭고 질풍노도였던 시절을 지나, 한국에 돌아와 1년이 지났다. 다시 한국에서도 가을 바람이 불어왔는데, 바람 속에 항주 도로의 먼지가 묻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곧 ‘Lost stars’를 틀고, 거리를 거닐며 그 때 함께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항주의 가을이 그립다고 말했다. 친구가 놀라며 자신도 오늘 항주의 그 가을이 너무 생각났다며 어느새 항주에서의 추억을 곱씹는다.


   항주에서 맞이했던 그 가을은 내 인생에서 온 몸으로 가을을 맞이했던 유일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새 나이도, 거리도, 마음가짐도 달라졌지만 가을 바람을 맞으면 자연스레 유튜브 뮤직을 뒤적거려 애덤 리바인의 ‘Lost stars’를 튼다. 그리곤 그 시절 친구에게 카톡을 보낸다. “친구야,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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