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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Nov 21. 2020

나로 있게 하는 당신에게 / 박브이

좋은 친구의 모습

  당신과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얼마나 알고 지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알게 된 계기는 당신과 내가 가까워진 이유나 원인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그저 감사한 우연에 불과합니다. 서로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알고 지낸 시간의 길이보다는 함께한 순간들이 쌓여 채워지는 밀도입니다. 그 모든 것의 결과로 지금 내가 당신의 곁에 있고, 당신이 나의 곁에 있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울 수는 있으나, 당연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모두의 곁에 있을 수 없음에도, 그 중에서도 나에게 곁을 내어준 당신을 늘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듯, 저도 당신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 이전에, 당신은 아직 당신에 대해 더 알아야 할 부분이 있고, 나 역시도 아직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어쩌면 스스로를 혹은 서로를 더 알아가면서,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거나 되려 거리를 두어야 할 이유를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서로 함께한 시간에게 속아 그때까지 알고 있는 서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기도 할 것입니다. 사람은 늘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놓여있는 존재임을 잊은 채로 말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더 알고 싶습니다. 당신 역시 그러기를 바랍니다. 아직 우리가 함께 나눌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앞으로 있을 당신과의 순간을 기다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 속에서 당신의 방향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 어떤 사람인지보다, 그래서 지금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싶은지를 묻고 싶습니다. 과거의 당신의 말과 행동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당신을 이루었듯,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당신 역시 앞으로의 당신에 보태질 것을 압니다. 당신을 만들어가는 당신의 묵묵한 일상 속의 크고 작은 고민과 선택을 늘 신경쓰고 있습니다.


  나 역시 당신에게 나의 방향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언젠가 말했듯, 나는 온전한 나로서 있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나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로 완성에 닿지 못하고 과정을 맴도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나로서 혹은 한 사람으로서의 완성이란 닿을 수 없는 신기루같은 것이며, 그에 가까워지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란 매우 번거롭고, 가끔은 민망하며, 자주 고독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스스로를 겸손하게 하고, 서로를 배려하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나에게 가까워질수록, 당신을 더 당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랬듯, 당신이 함부로 스스로를 결론지어 버리는 자만에 빠지거나 스스로에게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나는 당신을 설득하려 하거나 나무라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당신을 아프게 해 나의 곁을 떠나게 될 지라도, 당신이 그랬듯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되어가며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당신이 그랬듯, 당신이 당신 스스로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나의 시선이나 사색이, 나의 시간, 나의 손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서로를 서로가 견뎌내며 각자가 스스로에게 가까워져 간다면, 나는 당신으로써 내가 될 수 있고 당신 또한 나로써 당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의 존재 자체가 필요합니다. 내가 나로서 있고 싶어 하듯, 부디 당신 또한 당신으로 있어주기를 바랍니다.


  언제나처럼, 곧 나와 당신으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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