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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Dec 07. 2020

내가 묻는 글 / 박브이

  일주일에 한 번 있던 클럽활동을 정해야 했던 초등학교 3학년. 들어가고 싶었던 인라인스케이트 부에 사람이 몰렸다. 담당 선생은 조금이라도 인원을 줄여볼 요량이었는지 설명회에서 교실을 가득 메운 아이들에게 거칠게 겁을 주었다. 결국은 쫓겨나다시피 교실을 나와 반으로 돌아왔다. 빈 교실에 앉아있던 담임 선생님은 의아한 얼굴로 왜 벌써 왔느냐 물었다. 괜한 억울함과 창피함이 뒤섞여 울음이 터졌다. 담임 선생님은 엉엉 우는 나를 달래며 당신이 맡고 있던 동시창작부에 들어올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매주 시를 읽고 쓰게 되었다.


  시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쓰고 싶었던 것을 썼다. 그러다 가끔 담임 선생님이나 친구들로부터 재밌는 발상, 인상적인 구절이라며 칭찬을 받을 때면 양볼에 열이 감돌면서 심장이 뛰었다. 담임 선생님이 학교에 계시던 2년 내내 동시 창작부에 몸을 담았고, 그 동안 장래희망 칸에는 시인이 적혔다. 그렇게 글을 쓰는 것에 재미를 붙여가며 고등학생이 되었고, 여러 사람의 권유로 교지 편집부에 들어갔다. 내가 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일었다. 동시에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졌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에 대한 고민에 닿지 못하고, 어떻게 좋아 보이는 글을 쓸 것인지를 궁리했다. 흥미로운 주제나 번뜩이는 아이디어, 상황에 꼭 맞는 예시, 같은 것을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는 단어 등으로 글을 채우려고 했다. 그렇게 쓰인 글은 근사해야 했고 그것이 내가 쓴 것임이 중요했다. 나보다 더 큰 사람이 쓴 것처럼 보이게 쓰다보니 솔직하지 못했고, 그럴수록 글 속에서 엿보이는 스스로의 모습이 보기 흉하게 부어올랐다. 그나마 괜찮은 글들은 그저 그럴듯할 뿐,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은 아니었다. 굳이 내가 써야될 글이지도 않았다.


  나중에서야 읽어보게 된 그런 글들은 민망한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자아낸 반면, 동시창작부에서 썼던 시들은 괜히 흐뭇하게 했다. 원고지에 어설프게 눌러적은 시들에 담긴 내가 더 뚜렷했기 때문일까. 물론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분명히 다른 존재이지만, 적어도 그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어린 날의 나를 꽉 붙잡아두고 있었다. 작은 눈에 담긴 너무 큰 세상을 옮겨적기에도 벅찼지만 솔직했고,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단어들을 가지고 조립하느라 단순했지만 담백했다. 그렇게 쓰여진 것들은 분명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이었고, 내가 써야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고정된 결과로서 존재할 수 없기에 늘 요동치는 과정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떤 생각을 품게 된 찰나의 차이로 그 전과 후의 내가 다르고, 각각의 내가 바라보는 세계 역시 다르며, 그런 다름을 알아채버린 나는 또 다시 달라진다. 그래도 좀처럼 기억되지 못하고 금방 휘발되고마는 말에 비해, 글에는 쓰는 순간의 스스로를 그대로 붙잡아주는 힘이 있다. 물론 그러려면 그 글에 나의 일부분을 한 웅큼 집어 글 안에 넣어야 할 것이다. 모든 문장에, 단어에, 쉼표나 마침표 하나에까지 자기 자신을 떼어 넣다 보면 그 글은 온전히 내가 쓴 글이 될 수 있다. 미지에 가까운 자기자신을 찾아 그것을 다시 다른 그릇에 옮겨 담아야 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자주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그런 글이야말로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고, 내가 써야하는 글이며, 내가 쓰고 싶은 글이다. 한 편의 글에 결코 온전한 나를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이런 저런 글 여기 저기에 묻어 있는 나를 조금씩 모아보면, 내가 무엇이 될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정도는 짐작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글 속에 담겨있는 내가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모습이어야, 그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나를 오해없이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겨우 써 내려간 한 자 한 자가 나와 가까워지는 한 걸음 한 걸음일 것이라고 믿으며 쓴다. 그렇게 글로써 누군가와 만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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