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모든 게 사라진다

좌절 도피 일상 나눔

by 예하

그래도...해보자

아직 이 정도의 마음이라도 남아있다면

일단 가벼운 옷차림으로 밖으로 나가자


이왕이면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이른 오후면 좋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한 길로 쭉 이어진 고른 길을 쉬지 않고 걸어보자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던 걱정, 불안, 분노마저 따돌릴 만큼

쉼 없이 바람을 가르며 걸어보자

내 생각이 나를 따라잡지 못할 만큼 걷고 또 걷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이 터엉 비어지는 걸 느낀다

점점 더 스멀스멀 내 몸을 비집고 흘러나온 땀의 촉감에 집중하게 된다

땀을 흘린 몸이 나를 지배하게 내버려 둬라


걷다 걷다 걷다 보면 땀이, 내 몸이 나를 지배하게 되고

그 어느 때보다 심플한 내가 된다

그래, 정말 이렇게 살고 싶다

그저 걷고 땀 흘리며 생각없이 움직이고 싶다

그래본 적이 얼마나 될까

얼마나 많은 생각들로 내 몸이 꽁꽁 묶여 숨 쉬지 못한 걸까


그렇다. 몸이 해방되면 생각도 해방된다

그 해방의 순간을 가져오는 이 걷기가

지금은 나의 유일한 휴식처다

이렇게 하루 한 번 나는 쉼을 얻는다


예전이라면 기를 쓰고 피해 다녔을 쨍쨍한 햇빛속으로

나는 기꺼이 걸어들어간다


이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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