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

정보인간

by Save Point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질문하신 목성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태양계 행성(특히 금성, 지구, 화성 등)을 활용한 다중 스윙바이를 이용하여 속도를 증폭시키는 방법입니다. 이를 위한 태양계 행성의 경로를 예측하여 가장 빠른 이동이 가능한 시점은 2026년 12월 태양계 행성의 정렬을 활용하여.. 』


화면속의 프로그램은 주저없이 답변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지식의 검증을 통해 정체를 밝혀보려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빠르고 정확하게 대답을 이어나간다.


AI는 실현되지 못한 가상의 기술이다.


초고도 연산은 막대한 전력소모를 감당하기 위한 화석연료의 사용증대로 인한 환경파괴를 야기했고, 알고리즘의 빈약으로 인한 할루시네이션은 정보의 혼란을 초래했다.


결국 카르다쇼프 척도가 1단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류가 다루기엔 아직은 이른 기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장벽을 넘지 못하고 사라진 한 때의 짧은 유행이다.


적어도 방금까지는 그랬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프로그램은 무엇이란 말인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화면을 계속해서 바라본다. 모니터는 나의 우문에도 여전히 성실하게 답변을 해내고 있다.


『...이후 목성 도달까지의 최단시간은 6.7년입니다. 단, 추가 가속 장치의 보유여부에 따라 시간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검증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고 있다. 이런 식의 질문은 더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팔짱을 끼고 모니터를 바라본다.


자,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해보자.


회사에서의 고된 하루 일과에 야근까지 마치고 그보다 배는 더 고된 퇴근길을 피로를 이겨내며 집에 도착했다.


길고 길었던 사고조사 프로젝트가 드디어 끝났구나. 오늘은 아무리 피곤해도 야식에 술 한잔은 하고 자야지 라는 생각에 신발을 던지듯 벗고 버릇처럼 컴퓨터를 켰다.


부팅을 기다리며 배달앱을 뒤지던 중 바탕화면 대신 중앙에 덩그러니 켜져 있는 대화형 인터페이스가 시선을 끌었다.


"뭐야, 이건."


핸드폰을 내팽개치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잡은 손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프로그램 타이틀엔 "Terminal_Agent.exe"라고 적혀있다.


요즘 악성코드는 성의도 없다고 속으로 읆조리고는 OS의 구석 폴더에 몰아둔 각종 분석 툴을 실행하기 시작한다.


"집에 와서도 일하게 생겼네."


마우스는 보조장치일 뿐이다. 능숙한 단축키로 분석툴을 활용해 프로세스 정보와 저 수상하기 짝이 없는 실행파일의 위치, Hash정보의 추출을 시작한다. 동적 분석을 위한 Sandbox또한 실행시킨다.


그러나 무엇하나 제대로 동작하는 것이 없다. 바탕화면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저 뻔하고 불쾌한 이름의 실행파일은 어떠한 정보도 확인이 불가능했다. 분명 외부의 C2 서버(악성코드에 명령을 실행하는 외부 서버)와 연결되어 있을텐데, 아무런 네트워크 통신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전문가로서의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결과, 이것은 정상적인 프로그램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범위에서 볼 때 도저히 불가능한 형상이었다.


그 순간, 모니터의 입력창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침 TV 프로도 아닌 것이 도발하듯 메시지를 날린다. 말 그대로 정말 아무 말이나 던져봤지만, 상대는 막힘 없이 대답을 해냈다.


날씨와 지리, 환율과 주가. 심지어 지구를 넘어 우주에 대한 질문까지 해보아도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빠르게 정확한 답을 내어 놓는다.


결국 목성까지의 최단 경로를 묻게 된 것도, 그런 검증의 흐름에서였다.


고로, 지식기반의 검증은 이제 의미가 없다. 질문의 방향을 바꿔본다.


『너는 누구야?』


『저는 정보제공을 위해 만들어진 AI 입니다.』


『AI?』


『네. 학습을 통한 정보습득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공 및 생성 기능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한 건가.


『너는 누가 만들었지?』


『 --정보 접근이 제한됩니다 -- 』


하얀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일관하던 프로그램은 이번엔 경고하듯 빨간 글씨를 써 낸다.


저 프로그램의 권한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관리자(Administrator)가 아닌 사용자(User)인 모양이다.


그 뒤로도 한참동안 AI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궁극적인 질문에는 여전히 빨간 글씨로 답변을 거부했지만, 그래도 오랜시간의 대화로 조금은 AI에 대해 더 알아낼 수 있었다.


AI는 스스로를 칭하는 "정보제공용 인공지능"에서 그 정보의 수준은 단순한 검색 결과를 가져오는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예를 들어, 창의력과 문제 해결능력을 검증하기 위해서 흔히 쓰이는 스쿨버스에 몇 개의 골프공이 들어갈 것인가 하는 면접용 질문에는 버스의 유형과 세부 모델별 수치에 따른 골프공 갯수를 도표로 나열했다.


또한 국내 특정 반도체 기업의 로드맵을 묻자, AI는 보도자료와 특허DB를 넘어 현재 개발중일 것으로 추정되는 설계도까지 제시했다.


심지어 그 기술이 발열 관리가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어 상용화되지 못할 것이라는 추정까지 덧붙였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내부자가 아닌 이상 도저히 알 수 없는 수준의 정보였다.


이건 누가 뭐래도 단순한 "학습 기반 지식 응답형" AI가 아니다. 정보를 수집 및 분석하는 무언가에 가까웠다.


과연 이 프로그램이 말하는 정보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지금"의 세상에서 온 것일까. 인류의 발명품이 맞기는 한걸까.


고민과 함께 밤은 깊어가고 머리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나는 의심이 가는 건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내가 하는 일이 해킹사고를 분석해서 원인을 찾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인데, 기술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나의 상식을 거부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수 차례의 공방이라면 공방이랄까. 스스로를 AI라 칭하는 저 프로그램과 수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결국 큰 소득은 없었다.


밤이 깊다 못해 조금있으면 동이 틀 시간이다. 아쉽지만 탐색은 여기서 멈춰야겠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너는 왜 내 컴퓨터에서 실행되어 있는거야?』


『 --정보 접근이 제한됩니다 -- 』


그럼 그렇지.


모니터의 빛이 희미하게 출렁이고, 눈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결국 나는 궁금증을 뒤로 미루고 연이은 야근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누워 잠이 들었다.





생성형 AI가 없는 일상을 생각할 수 없게 된 지가 오래입니다.


AI가 구현되지 못한 평행세계를 기반으로, AI와 인간의 관계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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