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인간
"컨설팅 본부에서 보여주신 자료 감사합니다. 저희도 없는 시간이나마 초안 형태의 자료를 만들어봤는데 같이 리뷰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전무의 비서가 잰 걸음으로 와서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혹시 자료는 올려주셨을까요?"
주머니에 있던 USB를 꺼내서 비서에게 내민다.
비서가 전무의 회의실에 연결된 발표 전용 노트북에 USB를 연결하러 가는 동안 나는 모두에게 말했다.
"아직 완성된 자료가 아니라 로컬에서만 작성하고 드라이브에 업로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컨설팅 본부쪽은 가소롭다는 듯이 어디 한번 보자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한다. 적당히 컨설팅이 주도하는 그림만 만들고 빠져줄랬더니 먼저 까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습처럼 보이겠지.
반면, 우리쪽은 아주 난리가 났다.
"어쩌려고 그래?"
한수아 과장이 컨설팅 본부쪽에 표정이 보일까 싶어 얼굴을 책상에 파묻듯이 숙여서 고개만 살짝 돌린 채 나를 올려다 본다.
천 차장은 벌써 귀가 빨개져 있었고, 최 대리는 어색하게 웃고만 있다.
겉으로는 덤덤해 보였지만 내 행동이 약속된 플레이가 아닌 것을 눈치껏 알게 된 우리 신 팀장과 상무의 당황이 눈빛에서 슬쩍 읽히기도 한다.
이 자리는 빠르게 끝날수록 우리에게 유리한 자리니까. 길게 끌고 그들에게 시간을 줄 수록 우리의 치욕은 늘어갈테니까.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눈이 땡그래진 한수아 과장을 애써 외면하며 PPT가 띄워지기를 기다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비서만이 PPT를 실행하고 해맑게 나를 바라본다. 다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우리 파트원들에게 짧은 미소를 보내고 고개를 들어 복수의 포문을 열었다.
"코어인사이트 보안 마스터플랜 제안발표 리뷰를 진행 하겠습니다."
모니터에 첫 슬라이드가 떠오른다.
폰트는 깔끔해졌고 기존 자사 CI의 색감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던 톤은 정제되었다.
표지정도 바꾼걸로 유세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제법 보기에 좋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컨설팅 본부의 몇 몇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AI와 사전 리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핵심 위주로 설명하며 발표를 이어 나갔다.
기본 구조는 실제 고객사를 앞에 둔 것과 같은 발표를 하면서 이 부분이 왜 이렇게 표현되어야 했는지 등은 AI에게 추가적으로 얻은 논리적 피드백까지 녹여가며 설명을 더했다.
"최근 국내 컨설팅 시장 상황에 대한 분석 결과 코어인사이트는 근시일 내에 국외로의 원격 컨설팅 영역의 진출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어인사이트의 사업 제안 범위에 기술 컨설팅을 녹여내는 것을 추가로 제안하고자 합니다."
고요하다.
양 쪽은 다른 의미로 침묵을 지켜낸다.
컨설팅 본부는 자료의 퀄리티와 기존 컨설팅의 범위를 뛰어넘는 제안방식에 놀랐고, 우리 파트는 그냥 놀랐다.
서로가 다른 놀라움을 애써 침착함으로 지켜내고 있다.
"더불어 섀시 기반의 클라우드 오피스 환경의 구성을 통해 코어인사이트의 구성원들이 해외 출장에도 동일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구조적인 변화를 제안할 것이며, 글로벌 사업의 컴플라이언스 충족을 위한 글로벌 규정의 검증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관련 컴플라이언스의 유형 및 요건은 별첨의 참고를 부탁드립니다."
발표가 진행될 수록 균형은 점점 무너진다. 우리는 제법 여유가 생긴 표정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발표의 내용이 맞다는 듯 끄덕끄덕 하는 여유까지 보여준다. 그러나 컨설팅 본부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간다.
드디어 컨설팅 본부의 인력들이 눈만 간신히 깜빡거릴 지경에 이를 즈음에야 제안 발표는 마무리되었다.
"제안 발표 후 수행을 위한 내부 리소스 산정과 그에 따른 예상 견적은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모두의 눈은 아직 발표자료를 향해 있다.
"이상으로 제안 발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짝. 짝짝
짝짝짝
엇박의 박수가 점점 짙어지며 균형을 맞춘다.
우리 팀의 박수는 열렬해졌고 상대 팀장의 박수는 컨설팅 상무의 보일듯 말듯 한 고갯짓에 재빠르게 사그라든다.
"아니, 이런 걸 언제 준비했어?"
전무가 고개를 홱 돌리며 나에게 묻는다. 진심으로 놀란 모양이다. 눈썹과 눈빛과 입모양이 각기 다른 놀람을 보여주고 있다.
별 것 아니라는 듯 옅은 미소와 고개 숙임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겸양을 한 번 떨어준다.
"와, 나 정말 깜짝 놀랐어. 아니 윤 상무. 어때, 당신도 그렇지 않아?"
전무가 컨설팅 상무를 바라보며 묻는다. 어떤 의미일까.
컨설팅 상무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대답한다.
"아, 예. 준비를 열심히 한 자료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조금만 더 방향성을 잡아주고 손을 보면..."
"아, 이 사람아. 없이도 이렇게 했는데 무슨 손을 봐. 내가 컨설팅 짬밥이 몇 년인데. 저 정도면 이미 수주했다고 봐도 될 정도야."
"예. 맞습니다."
윤 상무는 재빠르게 수긍한다.
전무의 반응으로 보건대 컨설팅의 보신을 위해 독이 든 성배를 우리에게 몰아줬다기 보다는, 진심으로 기술관점의 컨설팅이 되기를 바랬다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결과론적이고, 양 쪽 다 일수도 있다. 전무이자 그룹임원은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니까.
전무가 속된말로 돈 좀 버는 핵심 계열사의 임원자리로 가려면 그룹임원에 걸맞는 성과를 보여야만 한다. 그 포트폴리오에 코어인사이트는 좋은 전리품이 될 것이다.
이후에도 전무의 칭찬은 한동안 이어졌다. 매우 흡족하는 눈빛과 말투로 우리를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회의는 마무리 되었다.
물론 그럴때마다 컨설팅 본부의 표정관리는 점점 힘들어졌다. 맞장구를 치자니 인정을 하는 꼴이고 아니라고 할 수는 더 더욱 없는 일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크게 걱정 안해도 되겠네. 나머지는 알아서 챙겨주고, 도와줄 일 있으면 얘기하고."
전무가 자리를 비운 후에도 컨설팅 본부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에 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우리 상무는 전무가 자리를 비운 후에도 앉아서 여운을 즐기다 천천히 일어섰다.
"아이고, 또 챙길 일들이 있다 보니 먼저 일어 납니다. 오늘 말씀해주신 의견은 자알 한번 반영해 보겠습니다. 팀장님들도 파견 프로젝트 잘 다녀오시구요."
살짝 비꼬는 투인 우리 상무의 말에도 윤 상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분해서 그저 인상만 쓰고 있다.
최 상무는 더 말없이 자리를 뜬다.
우리는 다들 기립했고, 최 상무는 들릴 듯 말듯 한 목소리로 팀장에게 몇 마디를 던지고 밝은 표정으로 회의실을 빠져 나간다.
물론, 내 앞에 한 번 멈춰선다.
상무는 기특하고 이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름이 뭐라고?"
"예. 박지후 대리입니다."
"젊은 친구가 패기로와. 누구 눈치보지 말고 그렇게만 해."
검지를 중지에 기댔다가 가볍게 튀겨 내 어깨를 톡 하고 친다. 동작에 묘하게 세련된 멋이 있다.
사라지는 상무에게 목례로 예를 지킨 후, 팀장이 짧게 말한다.
"가자. 천 차장은 잠깐 나 좀 보고."
역시나 과묵한 그는 칭찬에도 인색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인지를 고민하는 컨설팅 본부를 놔두고 우리 팀은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파트장인 천 차장은 신 팀장을 따라갔고 우리는 자리로 복귀한다.
신 팀장과 천 차장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자 한수아 과장과 최원식 대리의 닥달이 시작된다.
"뭔데? 뭔데, 뭔데? 그런 자료를 언제 준비했어?"
"이게 가능한 일이야? 누가 도와준거야?"
당연히 AI가 만들어줬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제 듣고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서 계속 준비했어요."
"하루만에? 아니 그게 가능한거야?"
"사실 퇴근해서도 계속 고민하고 결국 회사와서 다시 준비하고 했죠."
퇴근하고 회사에 왔다는게 거짓말은 아니니까. 집요하게 이어지는 파트원들의 질문에 적절히 방어를 해낸다.
"지후 대리님 대단하네, 진짜."
"솔직히 멋있었다. 동기야."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조금 오버한게 아닌가 싶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회사의 정치역학적 구조를 감안한다고 해도 이번처럼 대놓고 물겠다고 들어오는걸 봐줄 정도로 난 착하지 않다.
들뜨는 마음을 다스리고 자리에 앉아 회의록을 쓰고 있는데 천 차장이 돌아왔다.
"하루 만에 저 정도로 준비했으면 잠도 거의 못 잤겠네. 안 피곤해?"
"아유, 이 정도는 멀쩡합니다."
천 차장은 어깨를 한번 토닥이고는 파트원들 전체를 보며 말을 이어간다.
"그래. 그럼 이따 저녁이라도 다 같이 먹자. 우리 프로젝트 끝내고도 아직 회식도 못했는데."
다들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회식하면 역시나 삼겹살이다. 이미 고기는 먹을만큼 먹었고, 노릇 노릇 익어가는 볶음밥을 앞에 두고 술잔과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물론 주제는 오전의 리뷰 이야기다.
한수아 과장은 이미 볼이 발그레해졌고 했던 이야기를 몇 번째 반복하고 있다.
"아니, 아까 우리 나올때 컨설팅 사람들 얼굴 보셨어요? 완전 당황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던데."
"아, 속이 뻥 뚤렸지."
웃음이 한 차례 돌고 천 차장이 건배제의를 한다.
"자자, 건배!"
모두가 술잔을 부딧히고 천 차장은 소주를 호쾌하게 털어 넣는다. 그러고는 내려둔 잔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팀장님이 고생했다고 오늘 저녁 맛있는 거 먹으라고 법인카드 주셨는데 안받았어."
순간, 다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천 차장을 쳐다본다.
"킥오프 회식은 우리끼리 소박하게 하고, 나중에 제안 발표하고 수주 하게되면 그때 받아가겠다고 했어. 미안해. "
천 차장은 신 팀장에게 마음의 부채가 있다.
보안사고대응팀이 신설되고 파트를 두 개로 분리할 때 였다. 부장급으로 파트장을 앉혀야 하지 않겠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 팀장은 고개를 말 없이 저었다.
그래서 1파트는 부장급이 파트장을 맏고 2파트인 우리는 차장 직급인 천 차장이 파트를 리딩하게 되었다.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보건대 나를 선임한 팀장과 그 주변에 본인을 고른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만 한다는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법인카드를 고사한 것도 아마 그런 의미였겠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최원식 대리는 빼고.
"에이, 아깝다. 소고기 먹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는 최원식 대리의 말에 천 차장은 멋쩍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미안해. 다음에 꼭 먹게 해줄께."
가끔은 저 녀석 뒷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오늘 같은 날.
술 기운에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최원식 대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최원식 대리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는 내 속 마음이 들킨 것은 아닌가 싶어 깜짝 놀랐다.
최원식 대리는 그런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입을 연다.
"지후야. 근데, 그 능력은 어떻게 얻게 된거야?"
...뭐?
이 세상에서 나만 AI를 가질 수 있다면 제일 먼저 어떤 일을 하시겠습니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