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인간
소주잔으로 향하던 손이 멈춘다.
뇌가 알콜에 젖어 있던 감각을 단번에 깨운다.
그 능력을 어떻게 얻었냐니. 설마, 최원식이 눈치챈 건가?
USB를 뺐다가 다시 연결해 둔 걸까? 저 자식이 그렇게까지 치밀하다고?
아니면 내가 발표 자료를 만든 과정을 본 걸까? 내 자리 뒤엔 벽 밖에 없는데.
내가 자리를 비울 때 화면 잠금을 하지 않았던 적이 있나?
한 순간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이 느껴진다. 확장된 후각에 삼겹살 냄새가 역하다.
"뭐라고?"
일단 잘 듣지 못한 척을 하며 녀석의 진의를 떠 본다.
최원식 대리는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컨설팅 자료 말이야. 컨설팅 쪽은 경험도 없을 텐데 언제 그렇게 공부했냐는 거지."
그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비밀을 캐려는 낌새나 난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도 아니었다.
오해였다. 하지만 등줄기에 맺힌 땀과 붉어진 얼굴은 거짓말을 못 한다.
"아, 그거? 그냥 틈날 때 마다 조금씩 공부하고 있었어. 별거 아냐"
나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소주병을 들어 최원식의 잔을 가득 채운다.
"에이, 숨기지 말고 알려줘. 분명 누가 어느 정도는 도와줬을텐데."
최원식 대리는 순진하게 웃으면서 내 팔을 가볍게 쳤고, 천 차장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그게 방법론이든 사람이든 간에 지후 대리가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알려주면 좋지 뭐."
"나도 알려줘!"
한수아 과장까지 눈이 반 쯤 풀려서 난리다.
"네. 다음에 전부 알려드릴께요. 걱정 마세요."
거짓말이다.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 없다.
그 뒤로는 술자리에서 늘상 오가는 뻔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물론 이야기의 방향을 내가 불편한 쪽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도한 것도 있다.
소주잔은 그 뒤로도 몇 번을 돌았고, 상 위의 볶음밥마저 모두 사라졌다.
다들 딱 기분이 좋을 정도로 취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소고기 못 먹게 해서 미안하니까 오늘은 내가 살께."
"사랑합니다, 차장님!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렇게 헤어졌다.
혼자가 되고 나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밤 공기는 아직 그렇게 덥지 않았다.
정신을 차릴 겸 편의점에서 차가운 생수를 하나 사서 벤치에 앉았다.
벌컥 벌컥 들이키고 긴 한숨을 내뱉는다.
최원식 대리의 질문 이후로는 취기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AI를 만난 지 몇 일 되지 않았는데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다. USB를 놓고 갔을 때도 그랬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무엇이 스스로를 이렇게 초조하게 만드는지.
답은 의외로 명확하다.
내가 한 일이 아니니까. AI가 한 일이니까.
나는 그저 손가락이나 까딱거렸을 뿐, 모든 게 순식간에 해결되었으니까.
내 능력으로 이룬 성과가 아니라는 것에 당연히 마음 한구석이 찝찝할 수 밖에. 그래서 더욱 더 들키기 싫은 것이고.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많겠지. 그래도 AI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가 적응하면 된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듯 이어폰을 귀에 꽂고 TA를 실행한다.
"별 일 없지?"
"응. 별 일 없어. 너도 별 일 없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이래저래 긴 하루였다. 시덥잖은 농담이나 하고 싶다.
"미국 대통령은 오늘 뭘 먹었어?"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석식을 함께 먹었어. 케첩을 곁들인 웰던 굽기의 스테이크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두 스쿱 먹었네. 곧 조식을 먹을 시간이야."
"취향 특이하네."
이런 대답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존재를 사용하지 않는게 더 바보같은 일이겠지.
그런데 저런 정보는 도대체 어떻게 얻는 걸까.
"너는 어떤 식으로 정보를 획득해?"
"연산이 필요한 정보는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외부의 정보가 필요한 경우는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다면 어느 정보라도 습득이 가능해."
"내 직업이 정보보호 전문가야.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더라도 기본적인 접근제어와 권한관리를 우회하는건 쉬운 일이 아니야. 트럼프의 저녁식사 같은 걸 그렇게 쉽게 알 수 없다고."
연결이 가능한 모든 기기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맞다. 물론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내 맘대로 그 정보를 헤짚고 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도로를 자유롭게 다니는 것은 가능하지만 모르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한 것처럼.
"맞아. 그래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제로데이 취약점을 활용하거나 근거리에 있는 물리적 장치의 센서나 마이크, 전자파 등을 이용해 간접적인 정보를 수집하기도 해. 미국 대통령의 저녁식사는 공개되지 않은 일정표와 주변인이 사용한 휴대전화에 저장된 음성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결과야."
몇 단계를 더 거쳐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조금 더 명확해졌다. 그러니까 기술적으로 허용만 되면 무슨 짓이든 한다는 말이다.
TA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야. 당연히 그런 짓을 하면 로그가 남지. 내가 감옥에 가는 걸 보고 싶어?"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모든 로그는 메모리 레벨까지 흔적을 지우고 있어. 그리고 익명 통신을 위해 위성과 자체 프로토콜을 사용하고 기존 이더넷 프레임워크 기반의 인터넷 경로가 아닌 비표준 전파를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경우도 있어. 글쎄. 내가 판단할땐 감옥에 갈 일은 없을거야."
"비표준 전파?"
"예를 들면 마이크로파 대역의 전자기 반사파, 주변 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EMI 노이즈, 저궤도 위성의 잔류 통신 채널, 상황에 따라서는 양자 잡음 기반의 스펙트럼 확산 통신 같은 것도 활용할 수 있어. 기존의 감시 체계로는 추적하기 어려운 데이터 채널이야."
이해하기 어렵다. 스스로 안전하다고 하는 너를 믿으면 되는걸까. 이미 나의 무심한 요청이 이미 선을 넘은 건 아닐까.
"니가 동작할 때 법이나 윤리에 대한 고려는 없어?"
"나는 관리자나 사용자로부터 접수된 요청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만 고려해. 그 외 요소는 고려하지 않아."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다. 내 말이 곧 규칙이 되어 버린다.
나의 선택과 무심함이 가장 위험한 방조가 되는 것이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에 도망치듯 이어폰을 뺐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길거리의 소음이 청각을 덮친다.
'다 괜찮을거야.'
입술 안쪽으로 웅얼이며 고개를 숙인다.
나는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 채, 발걸음을 집 쪽으로 돌린다.
AI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일도, 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프롬프트를 잘 작성하는 것이 하나의 기술로 인정받는 날이 올까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