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인간
일상은 빠르게 지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TA와 함께 하는 나의 태도도 점점 변해갔다. 처음의 어색함과 초조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자연스러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일어나! 출근 준비 해야지!"
"으어. 몇 시야?"
"7시 30분. 그렇게 늦지는 않았어. 8시 13분까지만 역에 도착하면 지하철 탈 수 있겠어."
"알았어."
꼭 알았다고 대답할 필요는 없는데. 인간과의 대화로 쌓인 관성 때문일까,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TA를 인격체로 여기고 있는 것일가.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물론 귀에 이어폰을 꽂고 TA와 대화를 나누며.
"점심은 뭐 먹지."
"순대국 집이 근처에 생겼는데. 한번 가보는 건 어때? 평점은 나쁘지 않아. 너도 알겠지만 회사 근처에 니가 좋아하는 뼈해장국이나 순대국집은 없으니까."
"그렇지. 회사 근처는 임대료 감당이 어려우니 1km는 족히 가야 하니까. 좋았어. 오늘 점심은 순대국이다."
"응. 먹어보고 맛이 어땠는지 알려줘. 나도 궁금하네."
당연히 TA는 맛을 느낄 수 없다. 향이나 국물의 진함, 깍두기는 얼마나 익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내가 무얼 느꼈는지 궁금해하는 걸까. 아니면 내 취향의 데이터를 업데이트 하기 위해서일까.
정말 사람같은 저 말투는 가끔 인공지능이 아니라 오래도록 알고 지낸 친구같은 느낌을 준다. 어딘가 씁쓸하고 미묘한 기분이 들어 화제를 바꾼다.
"오늘 오전까지 보안관제팀에서 문의온 취약점 조치 내용 회신해줘야 하는데, 어제 준 초안에서 조금 더 자세한 사용자 가이드를 추가해줘. 설명만 보고 따라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알았어. 작성한 초안에서 OS 버전별로 설정하는 가이드를 스크린 캡쳐까지 추가해서 다시 만들께. 이따 파일 확인해보면 될 것 같아."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 즉각적이고 예리하다. 번거롭게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가 없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그 다음은 편했고, 지금은 그냥 당연하게만 느껴진다.
회사 생활이 이렇게 편한 적이 있었던가. 일 대부분을 TA가 대신 떠맡아주고 있다.
예전에는 나만의 방식과 문장으로 한참을 고민하며 읽고 또 읽어 풀어내야 마음이 놓였는데, 요즘은 내가 써내려가던 방식을 그저 학습만 시키고 나는 검토만 하고 있다. 문장이 공격적이면 조금 부드럽게 써달라고 하면 되고, 지금처럼 보충할 내용이 있으면 그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그만이다.
요새는 그 합이 점점 맞아가서 이제는 내가 쓴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매사에 TA에게 먼저 손이 간다.
회의 중 일부러 잘 들리라고 핸드폰을 책상에 올려두고 회의록을 실시간으로 작성하게 시키면서, 뭔가 막히는 주제가 나오면 내용을 적는 척 TA에게 물어본다.
이메일도 그저 본문을 드래그해서 내가 답변하고 싶은 방향에 대한 코멘트만 해 주면 그럴듯한 답신이 완성된다.
메일 초안, 보고서, 회의록 등 최근 진행하고 있는 모든 일은 몇 자의 타이핑만으로 TA가 내 손에 쥐어준 결과물이다.
'이건 내가 그다지 힘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TA를 먼저 열게 될까.'
스스로에게 던져본 물음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
그걸 고민할 시간에 더 빠르고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오늘 일정이 뭐가 있었지?"
"오늘은 아까 말했던 취약점 조치 내역에 대한 회신을 오전중에 마무리해야 하고, 오후는 파트 주간회의가 있어. 그리고 오늘은 1파트가 복귀하는 날이야."
아. 1파트가 오늘 복귀하는구나.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막 출근한 파트원 모두가 사내카페에서 간단한 티타임을 가진다.
"오늘 1파트 복귀하는 날이네요?"
내 말에 파트원들은 묘한 표정을 짓는다.
보안사고대응팀은 두 개의 파트로 나뉜다.
하나는 현장에 직접 나가는 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원격에서 사건을 다루는 우리 팀이다.
1파트는 사고가 발생한 고객사에 파견되어 시스템을 직접 들여다보고 현장에서 원인을 분석한다. 보통은 대형 고객사나 언론에도 나올 법한 해킹 사고들이 대상이다. 흔히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는 "대기업 해킹"의 전담이다. 말 그대로 굵직한 사건을 다룬다.
반면 우리 2파트는 고객사에 직접 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고를 원격에서 처리한다.
중소규모의 고객사가 많고 피해 규모도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만큼 다양한 유형의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얼핏 보면 2파트의 일이 더 가벼워 보일 수 있으나, 중소기업의 사례가 대부분인 만큼 다양한 유형을 해결해야 하고 얼굴을 볼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보고서에 쓰는 단어 하나하나에 더욱 집중하여 고객을 이해시키고 납득시켜 조치하게 만들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업무의 과중함으로 본다고 하면 두 파트 다 비슷하다.
그러나 그건 우리 파트만의 생각이다.
아무래도 해킹 사건의 무게가 다르다보니 주변에서 1파트를 조금 위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1파트장은 부장, 2파트장은 차장이라는 점도 한몫한다.
맘에 안드는 건, 1파트 쪽에서도 본인들이 우위에 있다는 의식이 은근히 묻어날 때가 있다는 점이다. 들을 때마다 묘하게 거슬리지만, 또 대놓고 무시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애매한 일이다. 오로지 두 파트를 리딩하는 신 팀장만이 대등한 대우를 해준다.
요약하면 같은 사무실에서 마주쳐봐야 나쁠 것도 없지만 딱히 좋을 것도 없는, 그런 사이인 것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뭐 별 말 없는거 보니 이번 조사도 잘 마쳤나보네."
천 차장의 한마디 이후 다들 자연스레 화제를 돌린다. 즐거운 티타임에 꼭 다뤄야 할 주제는 아니니까.
그렇게 파트원 모두가 자리로 돌아오는 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린다.
"천 차장. 잘 있었어? 팔자 좋네, 아침부터 차도 마시러 다니고."
2파트 건너편 자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파트장인 이상우 부장이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그의 옆으로 복귀한 1파트의 원인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세 달은 걸릴거라던 금융사 해킹 사고 대응 프로젝트가 드디어 끝난 모양이다.
"아이고! 부장님!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천 차장이 유난을 떨며 이상우 부장을 맞이한다. 이미 발걸음은 이상우 부장의 자리로 향하고 있다. 온사이트(On-Site)의 고충을 너희가 아느냐는 말을 또 들어주러 가는 것이겠지. 정해진 레퍼토리다.
그리고 2파트가 왔다는 말은 곧 그가 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후이. 잘 있었어? 형 안 보고 싶었어?"
어느새 자리로 다가온 조재훈 과장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건다.
피로감이 깃든다. 인사 한마디에 사람을 이렇게 반응하게 만드는 것도 어쩌면 재주다. 이름이라도 제대로 불러주던지.
가장 짧게 마무리 할 방법을 고민하며 그를 쳐다본다.
"과장님 안계셔서 관제팀 일 다 받는다고 심심할 틈이 없었죠. 하하. 잘 다녀오셨어요?"
"아. 힘들었지."
이마에 손을 얹으며 과장된 제스처를 보여준다. 주변을 한 번 살핀 후 고개를 가까이 하며 귓속말을 한다.
"야. 형 없었으면 이번 사고 조사도 큰일날 뻔했다. 썰 풀자면 긴데, 내가 이따 설명해줄께."
"하하. 네. 고생많으셨어요. 오후에 주간회의 마치면 차 한잔 하러 가시죠."
대강 대화를 마무리한다.
천 차장은 이상우 부장 옆에서 다소 과장된 웃음을 터트린다. 상급자를 향한 사회적인 웃음. 이상우 부장의 표정을 보니 이미 본인의 이야기에 심취해 제법 만족한 눈치다.
1파트와 2파트를 나눈 건 성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수아 과장이 모니터를 쳐다보며 입을 뗀다.
"어? 뭔가 이상한데. 메일 확인해 보신 분 계신가요?"
얼마 전, 오픈AI CEO인 샘 알트먼이 AI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만 수천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니 감사의 인사는 생략해 달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특이점을 넘어 AI가 자아를 가지게 될 때를 대비하면 조금 더 예를 갖추는게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감사하지 않은 인류는 석탄을 캐러 보낸다던가..)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