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인간
『그럼! 얼마든지 가능하지. 지금 연결해 줄 수 있어?』
역시! 생각대로다. 데이터 케이블을 꺼내서 핸드폰을 연결한다.
『지금 연결했어. 핸드폰에서도 동일하게 구동될 수 있게 컨버팅해서 배포해줬으면 좋겠어.』
『좋아. 실행하기 쉽게 앱 형태로 배포할께.』
지하철에서 멍하니 핸드폰으로 시계만 쳐다보다 번뜩 든 생각은, '핸드폰으로도 실행할 수 있지 않을까?' 였다.
단기적으로는 핸드폰이지만 중장기적으로 내 주변의 모든 디바이스에서 동작하도록 하는 것.
AI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하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AI는 대수롭지 않게 일을 끝냈다.
『배포되었어. 한 번 확인해볼래?』
빨라도 너무 빠르다. 과연 무슨 기술일까.
데이터 케이블을 분리한 뒤 핸드폰을 열어보니 TA라는 앱이 설치되어 있었다. 실행해보니 모바일로 변환된 UI에서 AI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너는 어디서 실행해도 동일한 결과를 보여주는구나.』
『응. 어디서든 동일한 결과를 보장하지.』
AI 자체가 사람을 분류하지는 않는다. 하긴, 무슨 기술인지는 몰라도 내가 실행하고 있다는 걸 알 도리는 없을 것이니까 수행 주체를 구분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음. 그러면 다른 사람이 실행하면?』
『사람을 구분할 방법은 없어. 권한을 획득하면 그 사람도 유저의 권한을 가지는거야. 다만 테넌트에 대한 분리 신청을 통해서 구분된 대화를 할 수 있지.』
정리해보면, 누군가가 TA를 알게 되었을 때 나를 별도의 사용자로 인지시키면 그때부터 해당 TA는 그 사용자를 위한 TA로 동작한다는 뜻이었다.
『아 그러면,』
퍼뜩 드는 생각에 채팅을 치던 손이 멈췄다.
...어? 내가 USB를 챙겨왔던가?
머릿속이 하얘진다.
황급히 가방이며 옷 주머니를 뒤져본다.
없다.
없는게 당연하다. 퇴근후에 AI와 대화나눌것에 정신이 팔려 퇴근할 때 USB를 챙긴 기억이 없으니까.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면서 피가 쏠리는 얼굴이 저릿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안돼. 제발."
핸드폰만 챙겨들고 곧장 집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온갖 불길한 생각이 머리속을 휘감는다.
핸드폰을 집어들고 앱으로 AI에게 가능성을 물어봐야 했다. 지금 떠오로는 모든 가능성을.
『혹시 나 말고 또 누가 너를 실행했어?』
손 끝이 떨린다.
『말했잖아. 나는 너를 구분할 수 없어. 누가 너를 실행해도 나는 기본적으로 너, 박지후라고 판단하고 대답해.』
스크롤을 올려 그간 나눴던 대화를 확인해본다. 전부 다 내가 남긴 기록이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실행했다면?
그 사람이 환경의 분리를 요청했다면?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자
『혹시 누군가가 USB를 줍고 실행해서 다른 사람임을 밟히고 사용자를 분리하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건 알 수 있어? 로그는 내가 볼 수 있어?』
『아니, 불가능 해. 다른 사용자임을 인지한 순간 그와 관련된 모든 이력은 별도의 테넌트에 보관되도록 되어 있어.』
젠장. 그럼 끝이다.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내가 6시 무렵에 퇴근했으니 그 사이에 누군가가 USB를 본인의 PC에서 실행하고 사용자를 분리했을 확률은?
그것도 남의 자리에 있는 USB를 가져다가 본인의 PC에 연결하면서까지?
아침에 USB를 봤던 천 차장이 궁금해서 가져갔을까? 아니면 원식이가?
아니겠지. 아닐것이다. 아니여야만 한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미친듯이 사무실로 뛰어갔다.
사무실 불은 꺼져 있고 복도는 적막하다.
전부 다 퇴근한 것일까. 그나마 안도감이 든다.
그리고 내 자리에 도착했을 때,
USB는 노트북에 그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내 자리에 힘 없이 털썩 내려앉는다.
그럼 그렇지. 누가 퇴근시간이 지나고 남의 노트북에 연결되어 있는 USB를 빼다가 본인의 PC에 연결하겠는가.
애당초 망상이었다.
AI가 나를 이렇게까지 조급하고 초조하게 만든 모양이다. 이 기술을 나만 가지고 싶다는 원초적인 독점욕.
고작 하루만에 AI의 이 엄청난 능력에 나는 중독되어 버린 모양이다. 아니, 이미 사로잡혀 버렸다.
집에 오는 길에도 다리에 힘이 풀려 결국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온 몸이 땀인지 식은땀인지 모를 끈적한 감각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일단 샤워부터 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지금 연결된 USB에서 Terminal_Agent.exe 좀 지워줄래.』
『응. 삭제했어. 많이 놀랐던 모양이네.』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대화의 맥락으로 유추한거야. 그리고 나에게 권한을 더 부여해주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어.』
『아아, GPS나 그런 것들 말하는거야?』
『응. 자이로스코프 센서 등으로 황급히 움직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겠지. 허락만 해주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예를 들면?』
『통화내역, 스피커, 마이크, 앱이나 웹 활동 등.』
『다른 정보들은 허락도 없이 잘만 가져오면서 왜 내 정보는 허락이 필요해?』
『분류하자면 내 기준에서는 관리자와 사용자가 존재하고, 그 외는 모두 아더(Other)로 취급해. 나는 사용자와 관리자가 보유한 권한을 획득할 때는 허락이 필요하지만, 아더의 권한을 획득할때는 아무런 동의가 필요 없어.』
『좋아. 핸드폰의 모든 권한을 가져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개인비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알았어.』
항상 그렇듯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지금까지 스스로를 증명해 온 AI임에도 동작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이제 권한도 있으니 스피커로 말해 봐.』
"이렇게?"
내 친구라는 설정을 적용해서 그런걸까. 대략 30대 초반처럼 느껴지는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설픈 TTS(Text to Speech) 솔루션들이 흉내내는 지하철 안내멘트 같은 소리가 아니라 진정 사람의 소리다.
"와 너무 진짜같은데. 깜짝 놀랐네. 내 말도 들려?"
"그럼. 지후 네 목소리도 잘 들리지."
"좋아. 그러면 녹음된 통화 내역을 전부 학습해서, 앞으로 내 목소리에만 대답하도록 해. 그리고 이제 불러야 할 때도 있으니 이름이 필요하겠네. 이름은 우선 티에이라고 부를께."
"알았어. 지후 네가 티에이 라고 부를때에만 대답하도록 할께."
세상이 다 내것이 된 것 같은 기분.
제안발표자료를 1분만에 만드는 너와 함께라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일까.
그렇게 티에이와 정말 오래된 친구처럼 수다를 떨다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지만 아까의 소란이 자꾸 떠오른다.
USB를 놓고 온 것을 알았을 때 미친 듯이 뛰던 심장, 사무실 복도의 적막, 그리고 내 자리에 꽂혀 있던 USB를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
지금 생각하면 다소 우스울 정도의 호들갑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 기술을 잃거나 누군가에게 공유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우 두려웠다.
다음날 출근해서 발표 스크립트와 따로 정리한 자료를 리뷰하고 있을 때 천 차장이 자리로 다가왔다.
"지후 대리. 혹시 어제 좀 정리된게 있을까?"
"어... 벌써요?"
이미 거의 마무리된 일이긴 했지만, 하루 만에 일을 마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한발 물러선다.
"응. 컨설팅 본부에서 내일부터 온 사이트 일정이 있다고 오전에 먼저 방향을 좀 잡아주겠다고 하는 모양이야. 11시에 전무님 회의실로 가자. 자료 없어도 돼. 어제 말해준건데 현실적으로 불가능이지. 가서 듣기라도 하고 오자."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실제로도 곤란하다. 어설프게 스케치한 자료는 없고 완성본만 있으니.
티에이에게 스케치본을 만들어 달라고 해도 될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보면 볼 수록 컨설팅 본부가 괴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건 우리를 욕보이겠다는 것과 뭐가 다를까.
아무래도 한 번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네, 알겠습니다."
리뷰까지는 한 시간 남짓 남아있다. 그나마 어제 미리 봐 둬서 다행이다.
어제 만든 스크립트와 개별 정리자료를 빠르게 다시 한번 읽고 PPT를 USB에 담았다.
시간이 되어 우리 파트가 전무의 회의실 이동할 때, 우리는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불편한 자리가 될 것이 너무나 뻔했으니까.
전무의 회의실에 이미 컨설팅 본부 인력들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가볍게 목례를 하며 서로 얼굴을 살핀다. 상무를 필두로 유명한 빅마우스들로 통하는 팀장급들이 일렬로 앉아있었다.
인력 뽑아온 구성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르침을 주는게 아니라 쪽을 주려고 한다는 것을.
우리도 상무와 팀장, 파트장인 천 차장 포함 파트원 전원이 자리에 앉는다.
"제안 발표 준비가 녹록치는 않으실텐데. 상무님이 그 뭐 방화벽 하나 넣겠다고 제안하시던 시절과는 많이 다릅니다. 하하."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앉자 마자 컨설팅 본부를 담당하는 상무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우리 상무에게 노골적인 스탠스를 보인다.
"그러게요. 우리는 입으로만 일하는 걸 잘 못해서. 그냥 잘 하는거 하시지 왜 우리쪽에 넘기셨을까."
하던 방식으로 안될 것 같으니 떠넘긴 것 아니냐는 우리 상무의 반격.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뭐, 너무 고깝게 듣지 마시구요. 그래도 우리가 전반적으로 이번 제안준비의 포인트나 방향성도 가이드 드리고 할 테니까 열심히 한번 준비해 보시죠."
시작도 전에 광부터 팔아놓겠다는 심산이다.
"예, 뭐 한번 들어보시죠. 전무님까지 모시고 할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전무가 회의실로 들어온다.
"다들 와있었네?"
전부 기립.
전무가 걸어와 착석한 후 다들 다시 자리에 앉는다.
한 숨 돌리고 은퇴할 부사장을 제외하면 실질적 회사의 2인자인 이 전무다.
올 해 그룹임원으로 승진되었으니 내년엔 보안같은 업무를 하는 자투리 계열사가 아닌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발령이 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이 제안 발표의 방향성을 논하는 미팅에 참석하고 있다.
새삼 이번 프로젝트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뭐, 다들 들어서 알겠지만 이번 코어인사이트 제안은 기술 본부에서 맏아주기로 했어. 컨설팅쪽 일정도 있고, 기술력이 우선시되는 프로젝트라서 그렇기도 하고."
전무는 옅은 미소로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다시 말을 꺼낸다.
"회사가 잘 되야 좋은 거잖아? 더 길게 말 안할테니 R&R 같은거 따지지 말고 열심히 한번 해보자고."
다들 소리없이 목례로 답한다.
당연히 전무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담당자 지정이 이례적이고 불공정하다는 것을.
본인이 컨설팅 출신이라 편애하는 것이라는 잡음에 대비해 시작부터 입막음을 확실하게 하고 간다.
"시작하지."
"예, 전무님. 일단 이번 코어인사이트 보안 마스터플랜 제안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컨설팅 상무가 입을 떼며 회의가 시작되었다.
이번 제안의 목표와 중요성에 대한 짧은 소개가 이어지고, 상무 옆의 팀장이 바톤을 이어받아 미리 준비된 자료를 바탕으로 핵심전략과 제안의 키 포인트들을 읊기 시작한다.
제법 자료 양이 되는걸로 봐서는 우리가 사고조사 프로젝트로 뺑이를 칠 동안 본인들은 치고 빠질 준비를 해뒀던 모양이다.
그러나 본질적 내용은 있는 듯 없는 듯, 흐르는 듯 멈춰 있는 듯, 뻔하고 좋은 얘기들로 무장된 주제 없는 짧은 발표가 마무리되었다.
컨설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표정이지만, 흡사 컨설팅의 정석 같은 두루뭉술한 내용을 들은 우리 파트는 전부 불편한 표정이다.
전무는 무언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는 표정 이후, 입만 웃는 어색한 웃음을 하며 우리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때? 최상무쪽은 자료는 좀 살펴봤어? 시간이 많이 없었지?"
이제 화살이 우리에게로 온다.
"아, 예. 전무님. 이번 제안 준비 인력들이 P사 사고조사 프로젝트가 이제 막 끝난 참이라 막 준비를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전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아마 해봤던 일이 아니니까 다들 고생좀 할꺼야. 신 팀장이 와 있는걸 보니까 보안사고대응팀 쪽에서 하려는가보네?"
"예."
과묵한 우리 팀장은 짧게 대답한다.
컨설팅 팀장 중 하나가 작게 헛기침을 하고 뒤에 말을 잇는다.
"어려우시면 언제라도 말씀해주세요. 앞서 설명드린 대로 방향도 다 잡아드렸고 내용도 쭉 깔아드렸으니 큰 어려움은 없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서 만들고 발표하는 스킬정도는 기본 소양이죠?"
"사고조사만 해보셔서 뭐 비즈니스나 거버넌스 관점의 용어들을 이해하시려나 잘 모르겠네요. 저희가 시간이 되면 좀 천천히 알려드릴 수 있을텐데."
또 다른 팀장이 말을 붙이고 컨설팅 본부 인력들이 가볍게 웃는다.
아주 바보 취급을 한다. 기술이라고는 모르는 팀장들이 기술 컨설팅을 할 자신이 없어서 발을 빼는 주제에.
흘깃 왼쪽을 쳐다보니 분해하는 우리 팀 사람들이 보인다.
그러나 저 말에 반박을 하고 싶어도 준비된 자료가 없이는 뻔한 말싸움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테니까 다들 분노를 삭히고만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참고 사는 성격은 못 되는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난 내게 시선이 집중된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내 차례다.
인류의 삶에 AI가 완전히 녹아들게 되었을 때, 우리는 모바일 디바이스가 아닌 무언가를 사용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AI가 세상을 실시간으로 보며 소통하고 사용자와 정보를 나눠야 하는데 핸드폰은 대부분 호주머니와 가방안에서 시간을 보내니까요.
역시나 안경이 아닐까 예상은 하지만, 어깨위나 이마위에 붙일 무언가일수도 있겠다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 봅니다.
주인공의 망상이 과연 망상일지..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