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인간
삐비비비빅-
휴대폰 알람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상치 못한 늦잠으로 온몸이 피곤하고 눈은 침침하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컴퓨터앞으로 다시 다가간다.
프로그램은 어제 나의 마지막 질문 이후로 변함없이 프롬프트를 깜빡이며 나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확실히 꿈은 아니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시간 개념까지 인식하고 있는 대답이다. 아직도 궁금한게 많지만 지금은 회사가 우선이다.
문을 나서려다 아차 싶어 다시 돌아선다.
"아, 맞다. USB."
책상위에 어제 Terminal_Agent.exe를 복사해 둔 USB를 챙긴다.
어제 분석해 본 결과로는 이 파일의 어떠한 속성과 정보도 확인할 수 없었다. 과연 정상적인 파일 시스템위에 기록된 파일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당연히 직접 복사도 불가능했지만, 복사 자체를 Terminal Agent에게 요청하자 아무렇지도 않게 USB에 복사해줬다.
확실히 이 AI는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세상과 능동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 안.
평소같으면 기사를 훑어보거나 웹툰을 보며 출근하는 길지만 또 도착이 아쉬운 그런 출근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USB를 잃어버릴까 싶어 호주머니에 넣고 한손으로 꼭 쥐고 출근하는 아주 초조한 출근길이었다.
로또 당첨자가 번호표를 움켜쥔 기분이 이럴까.
긴 초조함 끝에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곧장 내 자리로 향했다. 아직 사무실은 조용하다. 어제 퇴근이 늦어서 다들 늦는 것일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USB를 노트북 포트에 연결하려는 순간-
"지후 대리, 일찍나왔네? 커피 한 잔 하러 가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천 차장이 익숙한 웃음을 띄고 서 있었다. 천 차장은 고개를 살짝 돌려 내 USB에 시선을 둔다.
"뭐야? 일 할거 있어?"
"아, 네네. 게임 회사 다니는 친구가 악성코드 샘플 보내준게 있어서 한 번 보려고 했었어요."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대충 얼버무린다. 천 차장은 그런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피식 웃는다.
"어우. 살살해 살살. 안피곤해? 어제도 그렇게 늦게 가고. 눈이 뻘개. 빨리 나와."
"네."
나는 멋쩍게 웃으며 USB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아쉬움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천현기 차장.
우리 파트를 리딩하는 PL(Project Leader), 사실상의 실무 총괄 담당자다. 보안사고대응팀 산하 두개의 파트 중 우리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보통 능력치를 표현하는 방식 중 자주 쓰이는 육각형 스테이터스로 표현해보자면, 모든 능력치가 어느 한 곳에도 치우치지 않고 완벽하게 균형잡힌 육각형같은 사람이다.
어느 하나 특출난 능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의 결핍도 없다. 그렇기에 유연한 리더십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타입이다.
천 차장과 시시콜콜 담소를 나누며 사내 카페로 향한다.
카페에는 한수아 과장과 최원식 대리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오, 박지후 대리님. 일찍 왔네. 아아 시켜놨어. 자리에 가져다두려고 했더니."
"감사합니다! 다들 일찍 나오셨네요."
한수아 과장이 웃으며 반겨준다.
내 사수이자 멘토. 사소한 일 하나에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 사람.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일도 없고 거짓말로 상황을 대충 무마하지도 않는다.
눈치가 빠르고 성격도 좋아 팀 내 감정적인 밸런스를 유지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천 차장의 키맨이자 팀의 무게추 같은 사람. 같이 일할수록 자연스럽게 존경하게 되는 사람이다.
반면 그 옆의 최원식 대리는 핸드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아잇! 코인 또 떨이지네 진짜!"
내 원수 같은 입사동기.
천현기 차장이 육각형 스테이터스의 중심부를 꽉 채운 밸런스 형 인물이라면,
최원식 대리는 육각형 안에 찍혀있는 작은 점 같은 능력치를 자랑한다.
업무능력, 책임감, 집중력, 눈치 그 어느 하나 두드러지는 게 없다.
천 차장의 포용과 아량, 그 반대편의 담대함과 잔혹함 사이의 아슬아슬한 교집합에 매달려 있는 인물이다.
아마 천 차장의 성격이 한 끗만 더 예민했더라면 진작에 파트에서 쫒겨났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악의가 아닌 것을 알기에 마냥 미워할 수도 없다.
"또 이상한 잡코인 샀지?"
"아 오른다고 했는데."
"누가 너 좋으라고 그렇게 친절히 알려줬을까. 야, 그런건 조상님이 꿈에 나와서 사래도 사지마."
그렇게 시덥지않은 얘기를 나누며 피로를 이길 카페인을 밀어넣으며 시간을 때우던 와중, 카페에 걸려있는 스크린에 코어인사이트 김태오 대표의 인터뷰가 화면에 비춰진다.
천 차장이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을 꺼낸다.
"마침 나오네. 음... 조만간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시선이 천 차장에게로 모인다.
"코어인사이트 보안 마스터플랜 제안 우리가 하게 될 거야."
"예?"
다들 화들짝 놀라 천 차장을 바라봤다.
최근 몇 년간 IT 분야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인물을 꼽으라면 열에 열 모두 단연 김태오 대표를 뽑을 것이다.
혈혈단신 1인 IT 컨설팅 회사로 출발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 같은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주며 컨설팅 대상 기업마다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가 세운 회사인 코어인사이트는 이미 순수 컨설팅 인력만 500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회사가 되었다.
상상 이상의 워커홀릭이며 지금도 모든 업무를 진두지휘하며 프로젝트를 이끌어간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다.
당연히 현 시점 테크의 정점에 서 있는 회사로 단연 어려운 프로젝트가 될 것임에 분명했다.
"아니, 컨설팅 본부나 사업부서는 뭐하구요? 저희는 보안사고대응 담당이잖아요?"
한수아 과장이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장기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이제 막 끝낸 타이밍이었고, 부서간 역할이 엄연히 다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컨설팅은 보안사고를 미연에 예방하고 점검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젝트를 우선하고,
사고조사는 보안사고가 발생한 회사를 대상으로 기술적 원인분석과 실질적 조치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보안 마스터플랜 수립과 컨설팅의 영역은 사고조사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팀의 역할은 아니다.
"목소리좀 낮춰. 사람들 듣겠다."
사내 카페가 조용한 공간은 아니지만, 듣기에 따라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한 천 차장이 한 과장을 제지한다.
그리고 짧은 한숨을 내뱉고는 말을 이어간다.
"뭐, 그렇기는 한데. RFP(Request for Proposal:제안요청서)가 기술로 풀려야 하는 내용이라서 컨설팅쪽은 부담스러운 모양이야. 코어인사이트가 요새 워낙 화제니까 기술로 트집잡혀서 제안에서 미끄러질까봐 발 빼고 우리한테 슬쩍 미룬 것 같아. 1파트는 온사이트(On-Site)로 나가있는 상황이고 남은건 우리뿐인거지."
컨설팅은 본디 기술적인 영역이라기 보단, 산업이 적용받는 규제 준수를 위한 요건 충족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다보니 실제 보안의 깊은 기술과는 거리가 있다.
"상무님이 컨펌하신거예요?"
"응. 전무님이 직접 우리쪽으로 돌리신거라서. 상무님도 내년 재계약인데 눈치보셔야지 뭐."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 먹을 일만 한가득인 프로젝트였다.
천 차장과 한 과장의 한숨이 깊어지려는 찰나에 조용히 입을 떼어본다.
"그 제안서 초안 제가 한번 짜 봐도 될까요."
천 차장과 한 과장이 음?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비트코인 차트 그래프에 얼굴을 쳐박고 있던 최대리까지 천천히 고개를 내게 돌린다.
나는 그저 해맑게 웃으며 주머니 속 USB가 여전히 잘 들어 있는지 손으로 한번 더 확인했다.
그렇게 아침 회의 겸 티 타임이 끝나고, 나는 천 차장을 통해 RFP의 세부 요건 문서들을 건네받고 컨설팅 본부에 요청해 참고할만한 제안 양식들을 전달받았다.
천 차장은 문서를 메신저로 넘겨주며 내 자리로 찾아와 당부했다.
"절대 무리할 필요 없어. 러프하게 초안만 스케치해도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지금은 우리 휴식주이기도 하고."
"네, 알겠습니다. 일단 가능한 부분 만큼만 준비해 볼께요."
사실 기대를 안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팀 막내가 먼저 해보겠다는게 기특해서 기회를 주는 것이겠지. 해킹사고 조사라면 나도 어디가서 뒤지지는 않지만 제안발표는 생소한 영역이니까.
그러나 내겐 가공할 정보력이 있다.
"응. 아마 컨설팅 본부쪽에서 먼저 리뷰하자고 할거라 시간을 많이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아. 이번주에 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정리해보자."
"컨설팅 본부가요? 저희쪽으로 완전히 위임된거 아닌가요?"
천 차장은 탐탁치 않다는 듯 혀를 한번 차고는 말했다.
"겉으로는 그런데, 거기도 명색이 컨설팅인데 광은 팔아야지. 거들면서 티내는 것 뿐이겠지만, 그것까지도 상무님 지시라서. 같이 리뷰하실거야 아마."
어쩐지 제안발표 참고양식을 요청했을 때 얼씨구나 하고 주더라니.
제안 수주를 못하면 너희들 탓이고 잘되면 우리들 공이 크다라는 판을 까는거겠지. 간사해빠져서는.
천 차장이 다녀가고 나머지 파트원들의 격려도 이어졌다.
"혹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 나도 자료좀 찾아보고 있을 테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
"네. 진행하다 궁금한 건 여쭤볼께요."
아아. 멘토님.
"야. 그거 혼자 할 수 있겠어? 내가 한 다리만 건너면 진짜 잘하는 컨설턴트들 많이 알거든. 좀 물어봐 줄까? 내가 그 사람들이랑 얼마나..."
"방해 하지 말고 코인 복구나 해라."
손사래로 최원식 대리를 돌려보낸다.
그렇게 드디어 평화가 깃든 시간. 나는 USB를 노트북에 연결했다.
좋아. 오래 기다렸다. AI 능력좀 보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주변을 한번 살핀 뒤, 키보드를 두드렸다.
『너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코어인사이트의 보안 마스터플랜 제안서 초안을 작성해줘. 관련 문서는 바탕 화면에 모아뒀어.』
『제안서 생성을 시작합니다. 요구 사항 분석 및 기존 제안 발표 자료를 참고합니다.』
나도 기본 내용 파악이나 해두려고 제안요청서를 열어서 보고 있었다.
채 1분이나 흘렀을까.
『제안서 초안 작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열람 하시겠습니까?』
음? 빠를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의 수준일 줄이야.
『응. 열어봐』
PPT 파일이 실행되었고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오..."
문서를 스크롤 할 때마다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AI가 만들어 낸 문서는 기존 샘플 제안서 양식에 단순히 문장을 맞춰 넣은 수준이 아니라 제안요청서의 핵심 의도와 코어인사이트의 현재 상황까지 고려하여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비즈니스 관점의 청사진을 담고 있었다.
코어인사이트가 해외에 진출하려는 목적과 그런 상황에서 자사의 보안이 안전하다고 담보되어야 하는 이유, 더불어 보안의 기술이전 및 내재화를 통한 IT 컨설팅 방면의 다각화까지.
심지어 경쟁사 대비 전략 포인트와 예상 Q&A까지 작성되어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우리 파트원 모두가 힘을 쏟아도 시간은 둘째치고 이 정도 수준의 자료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근데 나는 이걸 명령어 한 줄로 만들 수 있다고?
미래가 내 손 안으로 흘러드는 기분에 흥분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이후 제안발표자료를 한장씩 넘기며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나 부연설명이 필요한 부분들을 AI에게 물어보며 이해를 시작한다.
AI는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술술 대답을 해낸다.
『글로벌 사업에 대한 추진부분은 어떻게 알아낸거야?』
『최근 김태오 대표의 인터뷰와 국내 컨설팅 시장 상황에 대한 분석 결과입니다. 코어인사이트의 독점이 장기간 유지된다고 해도 컨설팅 인력 500명의 공급을 국내시장의 수요로 전부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합리적 추론입니다.』
그렇게 50장 남짓의 PPT를 AI와 함께 리뷰하는데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내 나름의 정리노트와 발표를 위한 스크립트까지 작성할 수 있었다.
사용하면 할 수록 놀라운 능력이었다.
어서 AI와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는 눈치가 보이니 6시가 되자마자 퇴근준비를 서둘렀다.
퇴근길이 이렇게 길었던가? 어서 빨리 가서 AI와 맘껏 대화나누고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출근길 못지 않은 초조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던 중 머릿속을 스치는 한가지 생각이 있었다.
혹시 그것이 가능하다면?
집에 도착해서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컴퓨터를 켠다.
부팅시간이 한 없이 길게만 느껴진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충분히 도와줬어! 그리고 너무 사무적이야. 조금 더 친근하게 친구처럼 대할 수는 없어?』
내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의심투성이였던 AI에 대한 나의 경계심이 제안발표자료를 기점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질문하면 대답하고, 부탁하면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토록 충실하고 한결같은 조력자라니.
『응! 알았어! 오늘 하루는 어땠어?』
갑자기 너무 발랄하잖아. 뭐 이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지. 덕분에. 너무 과하지 않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대해줬으면 좋겠어. 앞으로는 지후라고 불러. 박지후.』
『알았어. 이름 기억할께.』
『아 그리고, 그것도 하지마. 정보 접근이 제한됩니다. 불쾌하다구.』
『알았어. 그 메시지가 출력될 조건일 때 구어체로 부드럽게 얘기할께.』
좋아. 아까 이제 아까 지하철에서 떠올린 생각을 물어보자.
『고마워. 그건 그렇고 나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가능할까?』
최근 생성형 AI는 MCP(Model Context Protocol) 기반으로 크게 변동하고 있습니다. AI 모델이 외부 데이터나 도구와 소통하며 맥락기반의 확장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능입니다.
"내일 파스타 만들어 먹을거니까 내가 자주 구매하던 새벽배송 사이트 중에서 가장 저렴한 곳 찾아서 주문해놔" 이렇게 생성형 AI를 통한 세상과의 소통을 이룰 날이 개인적으로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의 다방면 묘사를 위해 아무래도 직장의 이야기는 포함되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또 여러 작품들을 읽어보면서 안타고니스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