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죽지 말기
난치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행복해한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많은 사람들은 삶의 끝이 가까워질 때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 자연의 아름다움, 매일의 평범한 순간들이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이런 깨달음은 더 깊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나는 우울증이 있었다. 사실 내가 우울증 인지도 몰랐다. 난 항상 열정적이고 모범생이었으니까. 활발했고 대인관계도 좋았고 대외활동들도 많이 하는 누가 봐도 E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다 하던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아 무기력이 왔고, 그 기간은 점점 길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 종일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 자기 비하를 하다 지쳐 잠에 들었을 뿐이다.
다행히 지금은 극복했고 다시 일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지금에 와서 우울증이 걸렸던 시기를 돌아보면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려고 애쓴 내가 대견하다.
나는 내가 우울증에 걸릴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나를 우울증에 빠지게 했던 가장 큰 원인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인식‘이었다. 내 삶에 실패는 없어야 했다. 시험도 상위권이 아니면 나는 나쁜 아들이 되었고, 대학도 재수 없이 가야 한다는 압박으로 내가 원하는 곳을 고민하지 못하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다. 항상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닌 타인이 정해주고 강요한 삶을 살아야 했다.
부모님의 압박과 강요와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해 실패하면 낙오자라는 생각은 나를 불안에 머물게 했다.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건 실수해도 다시 해보고 극복해 가는 안정감 있는 경험이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위한 삶을 사는 연습을 시작했다.
부모님도 친구도 아닌 내가 0순위인 삶을 사는 것은 너무 어색하고 어려웠다. 방법도 몰랐었다.
무작정 서점에 가서 관련서적들을 찾아 읽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도 처음에는 몰라 헤맸지만 한 권씩 읽어나가다 보니 방향이 잡혔다.
그렇게 뇌과학, 철학, 심리학 위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인문학, 역사, 경제 등을 읽으면서 좀 더 넓은 이해의 폭을 가지려고 했다.
아직 많이 모르고 부족하지만, 이제야 조금이나마 내가 나를 돌보는 느낌이 들고 나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두웠던 터널은 끝이 나고 새로운 삶을 사는 느낌이다.
앞으로 많은 어려움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생각과 감정들을 기록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면 더 단단해져 있을 것 같다.
혹시라도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오늘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식사를 스스로 대접해 주고 잠을 푹 자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고 나에게 선물하는 하루를 살아본다면, 살아있다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해보는 경험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