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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Nov 27. 2020

수능 전날 그가 날 때린 이유

네 일생 일대의 기회는 내 손으로 끝내 주겠어. 

“수능 전날 뭐 했었어?”


“뭐 하긴. 전날 엄마가 시험 잘 보라고 차려준 음식 먹고, 일찍 잤지. 다음 날 일찍 일어나서 시험 보러 가려는데, 교통 체증 있으니까 택시 태워 보내주셨고.”


“아, 그랬구나. 점심은 도시락이었지? 뭐였어?”


“사골국이었던 것만 기억나. 웬일이래 하면서 먹었던 기억이 나. 넌 어땠어?”


“나?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맘 때면 수능으로 난리다. ‘일생일대의 날’인 만큼, 온 나라가 호들갑이다. 주어진 시간에 고도의 집중력과 기억력을 발휘해 시험을 치러야 하니 수험생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하려는 배려가 넘친다. 고단백 식사를 준비하고,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도 해주고, 최대한 평상심을 잃지 않도록 이쪽에서 신경쓰고, 급한 일 아니면 뒤로 미루고, 심지어 나라에서는 대중교통 특별 수송 계획까지 세운다. '수험생 먼저 태워주기' 운동까지 한다. 수험생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동하여 공정하게 시험을 치룰 수 있도록 며칠 간 온 나라가 숨을 죽이고 도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만 하다. 수능은 학생들의 로또다. 하루만에 미래가 결정된다. 그날 하루 어떻게 머리가 빠릿하게 돌아서 좋은 결과가 나면 더 좋은 대학, 그리고 더 좋은 미래가 보장받지만 반대도 있다. 수능은 신분 세탁이다. 오늘까지의 불운을 씻어내는 만병통치약이다.  고3 아이들의 얼굴빛은, 바탕은 앳되지만 눈은 도박하러 나선 5~60대 아저씨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명운을 걸었다. 그 날이 아니면 안 된다. 그 날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미룬다. 친구도, 애인도, 취미도, 옆 친구와의 훈훈한 대화도, 협조하며 살아가는 정신도, 펫과의 다정한 시간도, 인권도, 미움도, 누군가에 대한 관심도 전부 다 끊어버린다. 


내가 알고 지냈던 어느 여자아이는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그와 나누었던 연애편지를 한데모아 불태웠다. 독했다. 결의가 엿보였다. 어떻게든 이번 경쟁에서 이겨서 일류의 인생을, 남보다 나은 인생을, 편안하면서 독소가 최대한 배제되는, 속물이라고 불려도 좋으니 우위에 서는 인생을 살겠다는 욕망에 가득한 결의말이다.


그건 간신히 십대 후반에 접어들었을 뿐인, 아직 아이에 불과한 고3들의 눈에만 서린 게 아니다. 고3 학부모는 아이 성적에 따라 일희일비, 함께 스트레스를 받고 함께 늙는다. 정시니 수시니 특기자 전형이니 하면서 정보를 긁어모으며 아이의 비서를 자처한다.


그러나 나의 부모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수능 보기 전날 밤, 아버지의 살기 어린 눈빛과 마주쳤다. 그는 무엇인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고, 내가 그를 무시하는 것이 틀림없다면서 뺨을 때렸고, 그 다음에는 머리채를 잡아 벽에 여러 번 박았다. 너 같은 건 어떻게 해야 한다는 험한 소리는 당연히 음악에 드럼이 빠지면 섭섭한 것처럼 끊임없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물론 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고 괴로웠을 것임에 틀림없지만(하도 여러 번 당했던 일인지라 난 그날 당한 폭력의 디테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합치면 일만 시간이 넘는다니까.), 문제는 이 같은 일이 오늘 처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는 점에 있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이상, 시작하면 몇 시간이나 지속하는 구타와 폭언인 만큼 나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나는 여러 번 거듭한 훈련에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군인 만큼은 아니지만, 머리 한켠이 분명 냉정하게 식어있었다. 계산했다. 언제 끝날까를 셈했다. 이 놈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전부 풀고 나면, 그러면 마침내 이 놈이 내 뒷머리를 잡아 끌고 방에서 거실까지 질질 끌고 오는 바람에 아까 다 하지 못한 마지막 요점정리를 하리라.


다음날이 수능이기 때문에 빨리 끝내주기만을 바랐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더욱 큰 자극을 원했다. 원체 자극이라는 건 맨 처음보다 더 커야만 만족감을 주게 마련이다. 내가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았을 때 그가 내게 행했던 최초의 폭력은 한 시간 내에 끝났지만, 이제 그정도의 폭력과 폭언으로는 그의 마음을 조금도 만족시켜 줄 수 없었다. 그가 나를 때리고 짓이기고 욕보이기를 끝낸 것은 새벽 세 시 삼십분 정도였다. 그가 그 살벌한 시간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게 열 시 정도였으니까, 다섯 시간 삼십 분에 걸쳐서 했다는 뜻이다. 눈앞의 샌드백에 만족할 만큼 분풀이를 한 그가 제 방으로 들어가 잠든 것은 거의 새벽 네 시가 다 되어서였다. 드디어 체력이 다해 이제 이 유흥을 그만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내일은 수능이다. 밤은 깜깜했고, 야속할 정도로 시간이 늦어졌다. 나는 자려고 누웠지만 잡힌 채로 흔들렸던 머리카락의 뿌리는 아팠고, 아까는 공포 때문에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했지만 맞은 곳들은 이제서야 둔탁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코를 만져보았는데 피가 흘러나와 단단하게 굳어진 지 오래였는데도 여전히 어딘가가 빠진 것처럼 얼얼했다. 눈이 매웠다.


단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자야만 했다. 나는 옆으로 누운 채 눈을 감고 자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심장이 괴상하게 뛰어댔다. 머리에 열이 올랐다. 침착해야 해. 별 것 아니야. 며칠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잖아. 아무 일도 아니야. 하지만 잘 수 있을 리 없었다. 도무지 잘 수가 없었다. 감은 눈으로는 눈물이 조금씩 흘러나왔고, 심장은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하는 머리에 반해서 끊임없이 절룩거렸으며, 제멋대로 불규칙해지는 숨때문에 어깨가 맘대로 들썩거렸다. 


눈을 감으니 시커먼 배경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몇 시간 전 그에게 했던 말도 떠올랐다. “제발요, 잘못했어요. 오늘 말고 내일 해주세요. 내일은 수능이란 말이에요. 내일 저녁에 때리시면 안 될까요?” 그 말을 할 때는 그게 그렇게 나 스스로가 미울 정도로 수치스러운 말인지 몰랐다. 나는 그 말을 하면서 그의 팔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굴욕감에 떨고 있었다.


역시, 나는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여덟 시, 나는 수험생들이 가득한 교실에 앉아 있었다. 교실 안은 조용했다. 아이들이 가슴에 품은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가우면서도 침착한 공기. 다들 이번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다짐을 실컷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결의는 나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미안하지만 나와 같은 상태로 수능을 보러 온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전날 맞은 타박상들을 몸에 껴안은 채로, 한 숨도 자지 못한 채로, 이 모든 장애물을 정신력으로 이겨낼 것이라고 다짐하는 내 눈빛은 어딘가 이상할 정도로 번쩍이고 있었다. 


1교시까지는 정신력이 이겼다. 하지만 두 번째 시간에 나는 잠들었다. 도무지 잠에 이길 수가 없었다.


나는 두 번째 시간에 아무것도 풀지 못했다는 것을, 오 분을 남기고 잠에서 깨어난 다음에 알아차렸다. 그나마 확률을 올리기 위해서 전부 같은 번호로 찍었다. 시험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점심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도시락을 꺼내는 게 보였다. 나 역시 도시락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밥과 김치가 보였다. 시험 보러 가는 자식을 위해 괜찮은 반찬을 준비해도 좋았을 텐데, 싸기 싫었지만 마지못해 도시락을 싼 흔적이었다. 그냥 내가 쌀 껄 그랬다. 힐끗 쳐다본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에는 두뇌의 가동력을 최대화하기 위해 정성을 쏟은 것이 분명한 반찬들이 보였다. 


차갑게 식어있는 밥알을 한 숟갈 퍼서 목구멍 앞에 갖다댔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나는 다시 마법같은 주문을 외었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이 교실 안에 있는 아이들 중, 전날에 나같은 꼴을 당하고서 부득불 시험을 보러 온 사람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이들은 중요한 시험에 임하는 진지함은 있었지만, 어딘가 십대다운 발랄함이 있었다. 설령 시험을 망친다고 해도, 나같은 절망을 맛볼 아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재수는 할망정. 더군다나 집안이 가난한 것도 아닌데, 다른 반찬을 싸 줄 만큼의 애정도 없기 때문에 밥과 김치만 달랑 넣어버리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도 아닐 것이었다. 그런 차이점을 나는 차갑게 식은 밥을 한 숟갈 입안에 넣는 순간 깨달았던 것이다. 그들과 내가 출발선부터 한참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통의 평범한 부모를 갖는 보편적인 행복을 누리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는 생각은, 평범하지 않은 부모에게서 이지메 같은 일상을 부여받고 있던 나를 위안하는 마법의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수능 시험장에서 명확하게 알게 되고 말았다. 부담은 있어도, 부모에게서 이런 식의 방해를 받은 아이들은 없겠지. 희망이 등에 지워져 무겁겠지만, 저주와 질투와 폭력과 무시가 붙은 채로 여기까지 온 애는 나 말고 없었다.


제기랄, 왈칵 눈물이 나왔다. 그 순간 아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같은 학교 출신으로 우연히 그 날 같은 시험장에 배정받은 아이였다. 그 아이는 아마 내가 시험을 잘 못봤나 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색해하면서 그 애는 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소리도 내지 않고 혼자 울었다. 다들 3교시 준비에 여념이 없는 상태였고 서로들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울고 있는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와서 이유를 묻는 사람도 없었다.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거듭 이야기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내 싸움은 끝난 게 아니야. 


체력은 한계였다. 밥을 위장에 우겨넣자마자 잠들어서 세 번째 시험 시간 직전에 깼다. 그러고 나서는 잠들지 않고 시험을 치뤘다. 시험을 다 치루고 난 시간은 오후 여섯 시 쯤이었다.


그 해 수능에서 나는 두 번째 과목을 빼고 전부 만점을 받았다. 


두번째 과목은 9점을 받았다.


지금처럼 한 과목 빼고서 지원 가능한 시절이 아니었고, 한 번호로 찍었는데도 확률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해 극단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수학의 후유증이 꽤나 컸기 때문에, 나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수능을 보기 전 나는 생각했었다. 반드시 좋은 점수를 내고 말겠다고.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 전기에 보면 에디슨의 일화가 있었다. 그를 무시한 차장에게 얻어맞아 한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발명가가 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왜 어린이를 위한 동화에 그딴 왜곡한 내용을 넣었는지 모르겠는데 에디슨이 직접 밝힌 바로는 때려서가 아니라 기차에서 떨어질까봐 잡은, 즉 오히려 차장이 그를 구해주느라고 귀를 잡았다고 한다.) 나는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내서 방송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그 동안 아무리 신고를 하고 도와달라고 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국가기관이 드디어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자녀 분이 문제인 것 같네요,라고 싱글거리면서 웃고 나가버리던, 가해자와 공범 같던 경찰을 찾아내서 복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점수를 받았으니 장학금이든 뭐든 받아 아버지가 없는 머나먼 학교로 진학하여 다시는 그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명문대에 진학했다고 하면 제 아무리 나를 무시하고 샌드백 취급하던 아버지도 이제 더 이상 때리지 않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정상적인 가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헛된 꿈을 꾸었다.


나는 매년 수능 때가 되면 그 날이 생각난다. 어떻게든 노력으로 불행을 이기고 싶었던 아이가, 위인전처럼 불굴의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결심했던 아이가, 전날 아버지에게 다섯 시간을 넘게 맞고 어머니에게서는 밥과 김치만을 받은 채로 간신히 시험장에 왔는데 그만 도중에 잠들어버린 다음, 점심시간에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고 있었던 날이 말이다.


당신이 나를 괴롭힌 것을 보란듯이 비웃어 줄거야, 맞았던 날들을 뒤로 하고 내 인생을 잘 살고야 말거야 하는 나의 의지와 노력과 희망이 모두 좌절된 날의 서러움과 쓸쓸함이 이맘 때가 되면 지독하게 선명해지고 만다.

고작 열 여덟살의 정신력이 그렇게 강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실패를 내 탓으로 돌렸다. 내가 더 강했다면 졸음따위 이길 수 있었을 텐데. 폭력에 폭력으로 답하는 유치한 복수가 아니라, 그놈에게 ‘네가 매일같이 때리고 던지고 욕하던 아이가 사실은 이런 성적을 받을 정도로 훌륭하고 남들에게 칭찬받을 만한 아이였다’고 알려주는 우아한 복수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두 번째 시간을 빼고 나머지 과목을 모두 만점을 받은 게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아마 못할 것이다. 내년 수능을 다시 보는 한이 있어도 도망칠 것이다. 향후의 일이 어떻게 되든.


왜 그렇게 서러워지는지 모르겠다. 매년 수능날이 되면 미디어에서 난리를 치는 것도, 생판 모르는 남의 집 자녀가 혹시 시험에 늦을 까봐 시험장까지 태워다 줬다는 미담이 보도되는 것도, 수능 경향이 어떻고 하는 것도, 온 나라가 힘써서 공정한 시험을 치루게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힘쓰는 것도.


아버지도 분명 저것을 보았을 텐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 지 알았을 텐데. 내가 무슨 70년대에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그때도 수능 때면 어김없이 난리법석이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렇게 했다. 모든 부모들이 자녀가 잘 되라고 걱정하고 기도를 하는 시간에, 그는 내가 망하기를 빌었고 최대한 못난 결과를 내라고 주문하면서 내 머리를 집중적으로 때리고 목을 졸랐다.


도대체 왜였을까?


보통 사람은 자신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는 내내 그런 비슷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 듯한 행동과 말을, 나에게 한 번도 한적이 없다. 내 성적표를 확인한 적도 없었고, 내가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지 확인한 적도 없다. 그에게 나란 존재는 샌드백일 뿐이었다. 나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도 없다. 꿈이 뭐냐고 물은 적도 없었고, 내 생각을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내가 아프다고 해서 관심과 걱정을 보이거나 병원에 데려다 준 적도 없다. 그는 나를 자녀라고 생각을 하기는 했던 걸까?  자녀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즉, 남이라고, 혹은 남보다도 못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방임이 아니라 그는 적극적으로 폭력과 폭언을 행사하면서 나를 괴롭혔던 걸까? 왜 수능 전전 날이 아니라 전날, 다섯 시간이라는 꽤나 많은 에너지를 들여서 나를 때려야만 했던 걸까?

이브 엔슬러는 이를 ‘질투’라고 명명했었다.


(….)나는 네가 실패하기를 기대했어. 네가 쓰러지기를 원했지. 네가 그 어떤 일에서건 성공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 하지만 내겐 기괴한 논리가 자리하고 있었어. 네가 독립적이 될수록, 성공할수록, 내가 너에게 행사할 수 있는 통제력은 줄어들잖니. 


어떤 아버지가 자기 딸이 이렇게 무너져 내리도록 내버려둘 수 있을까. 세상 어떤 종류의 분노가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끔찍한 얘기를 해줄까? 네가 돈도, 세상의 존경도, 미래도 없이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난 즐거웠다. (….)네 학비를 대느라 고급 아이스크림 영업사원으로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을 허비할 때 넌 작가나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야? 나는 원했던 것처럼 유대교 경전도 플라톤도 공부하지 못했고 꿈을 펼치지도 못했는데.(….)


질투라고 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놈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 목을 졸라 기절시키기를 즐겼던 놈의 눈동자에는, 줄곧 살의가 지독했다. 그는 나를 죽도록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화답한 거라고는 순순히 맞아준 것밖에 없었으므로, 그는 나에게 얼마 간의 호의를 가져도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존재이지 않은가. 하다 못해 복서들은 자기가 치던 샌드백에서 모래가 흘러나오면 아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나를 미워한 것일까, 아니면 나와 링크된 뭔가 다른 무언가를 미워한 것일까? 그 미움은 나에게서 왔다고만 생각하기에는 너무 깊고 짙다. 인터뷰라도 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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