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ynameisanger Jan 20. 2021

남부지방법원 앞의 정인이 화환들


화환의 줄은 길었다. 추위 때문에 손이 곱아오던 1월의 초입.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도 눈이 내렸다. 눈이 내렸던 다음 날이라 정성스레 보냈던 꽃들은 대부분 시들었다. 하지만 근조화환의 리본에 적힌 글들은 눈이 부시게 또렷했다.




나는 이 화환을 보낸 사람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글을 쓰는 사람이거나, 학대에 대해서 뭔가를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엄마는 내가 죽어야만 멈출거라는 걸'이라는 말은, 학대를 당하는 피해자들의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 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혹은, 가해자가 봐 줘서, 가해자가 사회에서 매장당할 정도로 이 즐거운 '놀이'를 계속하지는 않겠다고 정신을 '차려줘서' 폭력이 거기에서 멈췄다. 하지만 그것이 한참 진행되는 동안에는, 이러다가 죽는 것이 나의 인생의 결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폭력은 점점 농도가 진해지고, 발전하고, 악랄해진다. 첫 폭력부터 지독한 사람도 분명 있었겠지만, 처음에는 마치 물고기가 먹이에 입질을 하듯 정도가 약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아이의 반항이 없고 사회에서 나를 뜯어말리지도 않는 데다, 잘만 감추면 아무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그때부터가 문제다.



비명이 들리는 듯한 문장.

"어떻게 죽여야 살인입니까."


"아동학대를 강력범죄와 동등하게 다뤄주십시오."




엉뚱하게도 양부모에게 화살이 쏠리고 있는 모양인데 사건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그리고 법원 앞에 근조화환을 보낸 사람들은 사건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아동학대 범죄의 초창기에 막지 못하면, 즉 과거 몇 십년에 걸쳐 그래왔고 지금 이 사건에서도 그러했었듯(내 담당 경찰도 이번과 똑같이 반응했었다. 정말 추적할 수만 있다면 추적해서 책임을 묻고 싶다) 그래서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잡아버린, '가정 내의 일은 가정에서 해결하고 비범죄화하는' 사법 행정기관들의 문제.


그들이 초반에 신고가 들어왔을 때 막았다면 정인이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죽인 것은 정인이만이 아니다.

사건화 되지 않은 죽음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죽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들도 사회적으로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 개인에게 책임을 지워 죄책감을 짐지우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시스템의 부재나 사건화하는데 드는 품때문에 무시하게 되는 선택을 정당한 것으로 판단해주는 서 내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이 사건은 반복된다.


두 번째, 어떻게 죽여야 살인입니까

살인죄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미필적 고의가 필수다. 그런데 왜 아동학대에 대해서는 이같은 고의가 인정이 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판결문이 많았다. 나보다 절반도 안 되는 몸무게를 가진 아이를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는데 그게 어째서 왜,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머릿속에 없을 것이라는 전제가 들어간단 말인가?


성과도 있었다. '사랑의 매'라는 명분으로 과도하게 행사되는 민법상 부모의 훈육권 조항(제915조)을 삭제하는 쾌거였다. 이제 법률적으로 아동학대를 비범죄화하는 독소조항이 제거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서 아동학대 범죄가 앞으로도 여전히 비범죄화하거나 최소형량을 받는 '가벼운'범죄로 남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세 번째, 아동학대를 다른 범죄와 동등하게 다뤄주십시오.

효(孝)가 한국을 망쳤다. 부모에게서 오는 것은 그 무엇이든 관대하고 아량 넓게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며, 늙어서는 공양하라는 그 얄랑한 효의 강조가 아동학대의 씨앗을 커다란 나무로 키워냈다. 상고 이래 효를 하늘의 뜻으로 받들어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단군조선의 통치원리인 환웅칠훈에도 나온 '부모에게 지극히 효도하라'는 강조점. 그 이후로도 효의 강조는 계속되었고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 하느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라며 부모님 뜻을 잘 헤아려 순종하라, 봉양하라는 것을 몇 번이고 강조해왔다. 

그리고 그 강조가 지금의 아동학대와 연관이 깊다. 뭐든 지나친 것은 부작용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효(孝)와 노인공경이 우리나라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도 분명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다소의(?) 아동학대는 부모공경의 일환으로 아이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우스운 일이다. 아이의 안위를 위해서 부모가 해야 하는 응당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는 서구 사상이 들어온 다음에야 약간이나마 눈을 뜨게 되었고, 아직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나 혼자서 두 배의 고통을 짊어져야 했던 날을 기억한다. 내 부모의 아동학대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2학년 사이에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 한 시간 넘게 맞은 다음에 신고를 했다. 그날의 폭력은 평소와 비교하여 강도 높은 것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신고를 할 정신이 있었겠지?) 나는 경찰이 내 편을 들어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신고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게 다가가서 그들과만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들의 거짓말을 믿었고, 내 하소연 한 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두 명의 경찰 중 한 명은 나에게 단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갔다.


"너가 그렇게 문제라면서? 부모님 말씀도 안 듣고 아주 나쁜 문제아구나. 다신 신고하지 마."


지금은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꽤나 오래 전 얘기, 그러니까 2000년도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 경찰은 아이라면 당연히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반죽음이 되도록 맞아도 당연하다는 전제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그랬기에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나의 부모의 되도 않는 거짓말만을 철썩같이 믿고 나를 비난하는 듯한 말을 남기고 현장을 떠났다. 


나에게는 어둠만이 남았다. 세상 그 누구도 내 편이 아니며,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경찰마저도 내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일까. 정의의 편이 도와주지 않은, 오히려 훈계를 내리고 간 나는 악인 것일까.  부모가 나를 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일까. 내가 그럴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그것은 나의 낮은 자존감, 근거도 없는 스스로에 대한 비난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요 원천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만이 없는 거리'로 본 아동학대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