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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Feb 25. 2021

생일케이크

그 여자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생일상을 받아야지.

내가 너 낳느라 고생했는데.

오늘은 네가 날 위해서 봉사하는 날이야.”


내 생일이 되면, 나는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고, 다리를 주무르고, 그녀 대신 설겆이를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그녀의 샌드백이 되어, 일과 중 쌓인 그녀의 스트레스를 푸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그녀의 생일이 되면 말했다.


“내가 널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데 이 날을 그냥 지나가니?”


나는 그녀의 이 같은 행동에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나는 그녀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은 내게 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 본 적이 있다는 생일상이라던가 생일 케이크라던가 하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연애를 하면서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 모양인 부모를 만나서 컸으니 내 의견을 표출하는 것도 겁을 냈었다. 생일에는 케이크를 받았으면 좋겠어, 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애인은 케이크를 사 오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면서.


“누가 요즘 촌스럽게 케이크를 먹니. 지겹잖아. 케이크도 맛이 없고. 난 안 좋아해.”


즉, 나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서 생일케이크라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것을 깨달았던 건 몇년 전의 생일날이었다. 

그날부터 며칠 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술을 마셔서 신피질을 마비시켜 이와 같이 쓸쓸한 사실을 잊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다음 해 부터는 생일날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누군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저걸 봐, 거리에 걸어가는 사람들을 봐, 저기 웃고 있는 사람. 아마 집에서 생일 케이크 같은 걸 받은 게 수십 번은 될거야. 그래서 지겹다는 말이 가능한 거겠지. 지겹고 맛없다고. 그건 받아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이지. 저 사람은 수십 번 받아봤지만 넌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지.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못 받아보지 않을까?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거야. 부익부 빈익빈은 그저 돈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야.’


생일이 정말 싫어.


하지만 생일은 매번 지워지지도 않고 다가왔다. 카카오스토리나 카카오톡에 뜨는 생일 알림이 싫었다. 오늘은 너의 생일이야, 라는 말이 잔인하다. 생일에 좋은 기억이라곤 없는 사람에게 생일이란 기쁜 날이 아니다. 

여러 가지 시도는 했다. 홍대의 클럽에 가서 100db이상쯤은 되게 들리는 스피커 앞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밴드를 보면서 하루를 보내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번개’를 하고, 과음해서 뇌를 마비시키고, 가보지 않은 도시로 항공권을 끊어서 한국에서 멀어지고, 제주도에서 지내고, 온갖 행동들로 ‘오늘이 나의 생일’이라는 것을 잊기 위해 노력해 봤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 결국 도망치는 데도 지쳤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내 스스로에게 생일케이크를 주는 것이었다.


유튜브가 나를 구원했다. 직접 케이크를 만드는 것은,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다. 제누아즈를 만들고, 휘핑크림을 머랭쳐서 올리고, 아이싱을 한 다음 색소를 넣은 크림으로 장식하면 된다. 완성하고 나서 사진도 찍고 내가 이걸 만들다니 감탄도 한다. 그리고 그걸 먹으면 생일날 찾아오는 서러움과 괴로운 기억들이 조금은 지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직접 만들었다는 기억을 지워버리고, 생일날 그 케이크가 ‘짠’하고 배달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 만들었던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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